[선데이 칼럼] 김정은 위원장의 위험한 도박
이러한 새 대남 전략이 과연 성공할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래 북한 주민들은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경제를 살릴 근본 대책 대신, 시대착오적인 “자력갱생”을 외치고, 수십 년간 익숙해 온 ‘민족 통일’ 대신 뜬금없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이대니, 이것이 주민들에게 잘 먹혀들어 갈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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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파병 경제적 이익 얻지만
사상자 생기면 주민 불만 커질 듯
북 내부발 정치적 위기 가능성도
대외적으론 북·중 관계 악화 초래
」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파병은 또한 북한의 대외전략상 도박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탈냉전 이후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일방적으로 중국에 의존해 왔다.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 대결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완충지대로 삼고 식량과 에너지 지원, 외교, 군사적 후원으로 체제 유지를 도왔다.
그런데 북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원이 다급해진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부활시키고 무기 지원에 더해 파병까지 했다. 이로써 북한은 러시아를 체제 안보 보장의 중요한 축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제 북한은 러시아에 “우리 군인들이 피를 흘려 당신네들을 도왔으니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당신들도 우리를 도와야 하지 않겠냐”고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북의 러시아 파병은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의도가 담겨있다. 완전히 중국을 떠나지는 않겠지만, 러시아를 중국과 대등한 안보 지원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 김일성 주석이 했던 것처럼, 중국과 러시아를 서로 경쟁시키면서 양측의 지원을 최대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측은 반발하고 있고, 그래서 최근 북·중 관계가 힘들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유럽과 중동에서의 전쟁과 미·중 대결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이런 전략을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위험한 도박이다. 우선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과대한 낙관론에 올인하면서, 러시아보다 국내총생산(GDP)이 아홉 배나 큰(2023년 기준) 중국을 멀리할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 또 서방 측의 대응, 예를 들어 북한 군에 대한 심리전 전개 가능성 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심각한 전략적 난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은 완충지대 북한의 체제 유지와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북·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협력을 강화하며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일본·대만·필리핀 등의 안보 네트워크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이는 중국이 절대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중국 정부에 북한이 파병을 중단하도록 영향력 행사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북한과 러시아를 제어할 영향력이 중국에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확실해지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공격용 무기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화답이나 하듯이 러시아는 전술핵 사용 훈련 영상을 공개했다. 북한군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산을 촉발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다. 북한군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황이 더욱 어렵고 복잡해졌다.
북의 파병은 한국 안보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주고 있다. 먼저, 한반도에서의 남북 충돌 상황이 발생했을 때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익힌 현대전의 경험을 반영해 북의 재래식 전력도 강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1000여 회에 걸친 핵실험으로 축적한 핵기술과 노하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핵 추진 잠수함, 군사정찰 위성 관련 기술들을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하면 북은 핵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력 면에서도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에게 확장억제를 제공해야 할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대만 해협 긴장 고조, 미·중 대결 심화 와중에 국내 정치적 분열과 어려움에 빠졌고 이는 북한에게 대남 공격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오판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크라이나 전황과 미국 대선 상황의 진전을 보아가며 단계적 대응을 하되 살상 무기 지원은 러시아 군사기술의 북한 이전을 촉발할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안보를 국내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의 러시아 무기 지원이나 파병이 마치 모두 한국 정부 탓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국민들의 눈에 결코 신중하지 않게 보일 것이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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