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예술가는 창작이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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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기부 강요 받는 경우 많아
예술을 비생산적 일로 보기 때문
실제론 경제 효과와 가치 엄청나
일 시키려면 적정 대가 지급해야
」
이젠 그런 태도가 긍정적인 자세가 아니라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결과임을 안다. 책이 없으면 도서관도 없다. 그 책을 쓰는 사람은 작가다. 도서관 측의 요청에서 작가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 무심함이 느껴졌다. 더불어 이런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던 작가가 그동안 많았기 때문에 도서관도 당당히 사용료 무료를 선언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도서관만큼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서관 측에 그런 자세로 행사를 기획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꼭 전달해 줄 것을 출판사에 강조하며 전시 참여를 거부했다. 앞으로 비슷한 제안을 받을 다른 작가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메일을 보낸 뒤 문득 전시를 기획한 도서관 직원도 공익 목적 무료 전시여서 월급을 받지 않고 봉사하는지 궁금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나를 소개하는 단어는 ‘글로자’다. ‘글’과 ‘근로자’를 합친 조어(造語)다. 세 글자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전의 나는 기사라는 글로 밥벌이하는 신문기자였다. 누구도 기자인 내가 일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특정 조직에 소속돼 있지 않을 뿐, 글로 밥벌이하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하면 당연히 그에 맞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나의 정언명령(定言命令)이다.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를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쓰는 작가들이 모인 ‘월급사실주의’의 동인으로 활동하는 이유도 이 같은 시각에서 비롯됐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이 정언명령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연결된 사람 상당수는 예술 분야 종사자인데, 그들 대부분이 크든 작든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경험을 해봤다. 지급이 미뤄진 원고료를 한없이 기다리고, 출연료를 떼이고, 전시한 그림 판매금의 행방을 알 수 없고, 재능기부를 강요받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나 또한 행사나 강연 등의 요청을 받았을 때 주최 측이 먼저 보수를 밝히는 경우가 드물어서 놀랐다. 구체적인 보수를 물으면 당황하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20여 년 전 용산전자상가에서 ‘용팔이’를 상대하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같은 촌극의 원인은 예술을 한가하고 생산적이지 않은 작업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에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석권, BTS의 빌보드차트 정상 등극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무형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인용해 반박하고 싶진 않다. 그저 상식을 말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에게 시키려면 당연히 그에 맞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예술가는 창작이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작품을 원한다면 예술가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게 상식이다. 예술가가 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그렇다면 예술인복지법을 살펴보라. 예술인도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 대상인 근로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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