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빙그레 웃다

2024. 11. 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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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전북 고창, 1974년 ⓒ김녕만
닮았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머리 스타일이 닮았다. 상투 튼 할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손녀에게 담뱃대를 내어주고도 연신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의기양양한 세 살배기 손녀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집안의 호랑이인 할아버지의 품을 점령하고 지존의 신성한 담뱃대를 휘두르며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해맑게 세상을 굽어본다. 천진한 웃음이 세상을 녹인다.

참 부러운 나이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휘어잡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그저 존재 자체로 단번에 무장해제 시키는 막강한 나이다. 겁 모르는 나이여서 그런가, 그늘 한 점 없이 밝게 부서지는 햇살 같은 웃음은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물들인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등록금 마련은 나의 최대 걱정거리였다.

그런데 한 스포츠 신문에 웃음을 소재로 한 ‘빙그레 사진콘테스트’가 열린다면서 상금으로 장학금을 준다는 공고가 나왔다. 눈이 번쩍 뜨였다. 전에 찍어둔 이 사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담뱃대를 흔들어대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표정도 보기 좋았지만, 할아버지와 손녀가 머리 모양은 비슷하되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서로 대비를 이루는 점이 재미있었다. 마침 흰 머리 성성한 백발의 할아버지는 뒷모습이고 검은 머리 나풀거리는 앳된 손녀는 앞모습이어서 사라지는 세대와 떠오르는 세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결국 이 사진은 나의 등록금 걱정을 시원하게 해결해주고 나도 덩달아 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

요즈음에도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르면 나에게 장학금을 주었던 그 회사의 바나나 우유를 사서 먹곤 한다. 사람들은 옆에서 어린애처럼 무슨 바나나 우유냐고 놀리지만 50년 전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웃음은 웃음을 부른다고 했다. 그 시절 내게 웃음을 선사해준 이 아이도 여전히 환하게 잘 웃는 행복한 어른이 되었을까? 지금도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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