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라, 현역 때 은퇴 후를 준비해라…늘 쓴소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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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의 대모’ 김경숙 한국체대 명예교수
김경숙 한국체대 명예교수(특수체육교육과)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대모(大母)’로 불린다. 1970년대 육상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김 교수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국가대표 출신 후배들에게 늘 “공부해라. 현역에 있을 때 은퇴 후를 준비해라”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김 교수가 최근 『국가대표가 나의 장래를 보장해 주지 않았다』(송현서가)를 출간했다. 부제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의 은퇴 이후 인생진로’다. 그의 자전적 스토리를 소개하며 엘리트 출신 선수들이 은퇴 후 제2 인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고2였던 1974년 김경숙은 여자 육상 400m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800m에서도 한국기록을 바꿔 놓았다. 1975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한국신을 경신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나라 육상 트랙경기 사상 첫 우승이었다.
낙담한 김경숙은 육상화를 벗고 고향 인천에 내려가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우며 실업자로 지냈다. “국가대표가 되고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 사람들이 나를 모셔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더라고요.”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그는 한때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김경숙을 다시 일으킨 건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이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자존심이었다. 악착같이 공부해 네 번 만에 고려대 박사과정에 합격, 특수체육(당시 명칭은 장애인체육)을 전공한다.
34세에 한국체대 교수가 된 그는 1998년 특수체육교육과 설립을 주도한다. 동료 교수들의 반대가 심했다. “엘리트 체육의 산실에 장애인들을 왜 받아들이냐”며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2002년 신입생부터 특수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이 나오게 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2012년부터는 일반 체육교사 자격증까지 딸 수 있게 되면서 특수체육교육과는 체대 지망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 됐다.
특수체육교육과의 위상을 끌어올린 김 교수는 국가대표 후배들을 대학원 제자로 받아들여 교수의 길을 열어주려 애썼다. 이진택(높이뛰기), 박봉고(단거리·박태건으로 개명), 양학선(체조), 심권호(레슬링) 등 당대 최고 선수들에게 “공부해서 교수 돼라”고 설득했다. 일부는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중도에 그만뒀다. 김 교수는 “이들의 공통점은 야단 맞고 지적 당하는 걸 못 참는다는 겁니다. 선수 때는 야단을 맞아도 ‘내 실력 향상을 위해서’라고 생각해 잘 참아내지만, 공부로 야단을 치면 자존심을 다쳤다며 나가버립니다. 참 안타깝죠”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대부분 실업팀 소속인데 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시간을 잘 빼주지 않는다는 거다. 지방 팀 소속 선수들은 대학원 강의나 논문 관련 면담 등을 위해 서울로 오는 게 쉽지 않았다. 김 교수는 “양학선의 경우가 제일 안타깝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졸업을 하지 못했다. 김 교수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라고 간곡히 설득했고 양학선도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전국체전에서 경기 도중 큰 부상을 당해 몇 달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출판기념회엔 지인·제자 등 120여 명 참석
국가대표 출신들은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대인관계에서 필요한 매너나 배려, 상황에 맞는 옷차림 등을 배울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대구교대 체육교육과 교수가 된 이진택은 중요한 손님과 미팅 후 승용차 핸들을 잡고 인사를 했다가 김 교수한테 호되게 혼이 난 적도 있다.
김 교수는 “선수생활 후반기부터는 은퇴 후 뭘 할 건지를 정해서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국가대표 출신들은 남다른 체력과 정신력이 있어서 방향만 잘 잡으면 어떤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 출신들이 대학원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대학은 인터넷 강의, 줌 미팅 등으로 수강의 문턱을 낮춰주고, 실업 팀들도 선수의 제2 인생을 위해 배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120여 명의 지인·제자들이 참석했다. 이진택 교수가 사회를 봤고, 육상 10종경기 한국기록 보유자 김건우는 노래를 불렀다. 김 교수는 제자 박태건이 맞춰준 정장을 입고 나왔다. 지병으로 요절한 유성종 박사의 가족도 자리를 지켰다. 김 교수는 고인의 딸 솔이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가 인사말을 했다. “저는 국가대표 후배들을 돕기 위해 체육계 수장이 되고 싶었지만 역량이 모자랐어요. 책을 냈으니 이걸 들고 전국을 다니면서 엘리트 선수들이 은퇴 이후 인생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멘토가 될 겁니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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