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가시화하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기업결합의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이달 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최종 승인할 전망이다. 2020년 11월 16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 이후 4년 만이다. 대한항공 측은 “미국의 경우 독과점 소송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데, EU 최종 승인 후 소송 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11월 중) 최종 승인이 완료되면 12월 20일까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취득,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해 ‘1사 2브랜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이 다음 달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통합 대한항공’이 출범하면 항공기 240대, 국제 여객 점유율 34%로 세계 7위권 항공사(메가 캐리어)가 탄생하게 된다. 다만, 대한항공이 ‘1사 2브랜드’로 운영할 계획이어서 아시아나항공이라는 브랜드는 남게 됐다. 대한항공과 항공업계는 한국의 첫 메가 캐리어 탄생인 만큼 경제적 효과가 작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항공업은 대규모 고정자산이 투자되는 ‘규모의 경제’ 산업이어서 항공기 가격·임대료나 공항 사용료 협상 등에서 지금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 브랜드는 남아 실제 2019년 삼일회계법인이 산업은행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두 항공사가 합병하면 연간 3000억원대의 수익 증대 효과가 발생한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미국 등 항공업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합종연횡을 해 왔다”며 “대한항공도 이번 합병으로 노선 운영 합리화, 원가 절감 등을 통해 항공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적화된 일정을 통해 환승 수요를 유치하고, 허브 공항 경쟁력 강화로 국내 항공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또한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방만 경영으로 재무구조가 악화하자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산은)이 나서 2019년 HDC현대산업개발(현산)에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현산과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2020년 대한항공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부채비율이 2952%(6월 기준)에 달한다. 산은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EU 등의 최종 승인 이후 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로 1조5000억원을 조달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예정이다. 대한항공과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은 유상증자에 참여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확보한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유상증자 후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600%대까지 하락하고, 이자 등 금융비용으로만 연간 1150억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M&A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두 항공사의 합병이 아니라 부실했던 아시아나항공을 회생시키기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며 “M&A로 항공사가 줄어 경쟁력이 약화하는 게 아니라 항공업 전반의 기틀을 다시 세워 두 항공사가 재도약하는 기회라고 보는 게 맞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EU·미국 등 주요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화물사업본부를 매각했고, 시장점유율을 낮추기 위해 슬롯(이착륙 횟수)·운수권을 반납해 실질적으로 손해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한항공이 피인수 기업의 재무부담을 떠안아야 하므로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합병이 오랜 기간 지연되면서 코로나19 이전 기대했던 만큼의 시너지를 창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슬롯 등 반납, 합병 손해 비판도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대한항공의 영업실적이 개선돼 온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사업 기반이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경영의 가장 큰 장애물이 불확실성인데, 결합이 성사됨과 동시에 (양사에) 그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이라며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보단 항공산업 발전의 정상화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문아영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도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단기적으로 (대한항공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이는 대한항공이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 확보와 메가 캐리어에서 오는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류상의 물리적 결합은 연내 끝나겠지만, 조직문화 등 화학적 결합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점도 우려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을 우려,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인위적인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달 28일 법원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관련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대형 항공사 두 곳이 하나로 합쳐지면 독과점으로 항공권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를 어떤 기준으로 통합할지도 초유의 관심사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 교수는 “현재 항공산업은 사실상 무한경쟁 시장으로 소비자가 충분히 가격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다”며 “저비용항공사(LCC)도 있기 때문에 가격이 급격히 올라 소비자 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마일리지의 경우 고객 형평성 문제와도 연결되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검증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