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 1등 신랑감은 ‘해적’…이런 상황이 개인만의 문제?
[정 변호사의 ‘죄와 벌’] 범죄는 개인 탓인가 사회 탓인가
이성(理性)을 중심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이익이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크면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았다. 효용이 비용보다 클 때 상품을 구매한다는 경제학 이론과 기본적으로 유사한데, 이런 방식으로 범죄의 발생을 설명하는 학문이 범죄경제학이다.
가령 누군가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벌금 1000만원을 내야 하는데 그 범죄를 저질러서 적발될 가능성이 30%라면 범죄로 인한 손실의 기댓값은 300만원(1000만원×30%)이므로 범죄를 통해 300만원보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범죄경제학에 따르면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도 개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치러야 하는 손실의 기댓값을 이익의 기댓값보다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형량을 높이는 것이겠지만 범죄 검거율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가령 전자발찌를 통한 전자감독 제도는 범죄 발생 시 검거율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범죄를 억제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범죄를 행함에 따른 이득이 손해보다 훨씬 더 큰 경우에도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 반대로 범죄를 저지르면 손해가 훨씬 더 큰 경우에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유사하게 신체적 조건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사고방식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을 발표한 이후 확산되기 시작했다.
범죄 유전성, 우생학 유행과 연관
이탈리아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체사레 롬브로소는 교도소에서 살아 있는 범죄자 6000여 명과 죽은 범죄자의 시체 380여 구의 골상을 관찰한 뒤 범죄자의 신체적 특징을 추출했다. 가령 범죄자는 귀가 술잔 손잡이 모양이고, 머리털이 무성하고, 수염이 적고, 이마가 눕거나 툭 튀어나왔으며, 머리 좌우가 비대칭이고, 턱뼈가 크고 사각형이며, 몽골인이나 흑인처럼 광대뼈가 넓다는 것이다. 롬브로소는 이중 5개 이상의 특징을 가진 사람을 ‘생래적 범죄인’(born criminal)이라고 부르면서 이들에게 사형을 통한 도태 처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지금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영혼, 이성, 자유의지 같은 검증 불가능한 개념을 사용한 설명을 하지 않고 관찰, 대조군과 비교군의 비교 분석, 통계 활용 등 실증적, 과학적 연구방법을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생래적 범죄인들을 도태시켜야 한다고 본 것도 당시 최신 이론이었던 진화론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그래서 롬브로소는 지금도 ‘범죄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인’ 개념은 범죄성이 유전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진짜로 범죄성은 유전되는 것일까. 20세기 초에는 양쪽 모두 범죄를 저지른 일란성 쌍생아의 비율과 양쪽 모두 범죄를 저지른 이란성 쌍생아의 비율을 비교하거나, 범죄자인 생부모를 둔 사람과 범죄자인 양부모를 둔 사람의 범죄율을 비교하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범죄성이 어느 정도 유전된다는 결론이 나온 경우도 적지 않다.
범죄성이 유전된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범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아예 도태시켜서 태어나지도 못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 초에는 범죄자나 열등한 인간은 거세시키고 좋은 자질을 가진 인간은 자손을 확산시켜 인류를 개량해야 한다는 우생학이 유행했다.
범죄자들이 남 탓, 사회 탓을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회적 환경이 범죄를 유발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구 ‘간병살인사건’을 보자. 2021년 22세 청년 김모씨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음식을 주지 않고 방치해 존속살해죄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코에 끼워진 호스로 음식을 주입해주고, 대소변도 치워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2시간마다 체위도 바꿔주는 간병인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러나 김씨는 시급 7000원짜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뿐 다른 재산이 없었다. 나머지 가족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월세가 연체되고 휴대전화와 도시가스도 끊겼다. 김씨에 따르면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를 테니까, 그전에는 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마라.” 며칠 후 김씨가 아버지 방문을 열었더니 부패한 냄새와 함께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김씨는 존속살해죄로 체포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아버지의 간병비를 다른 가족이나 국가가 마련해줄 수 있었다면 이런 존속살해 사건이 발생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사건에는 고령화, 청년실업, 가족해체, 1인 가구 확대로 인한 돌봄의 외주화 등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반영되어 있다. 이런 범죄에 대해 오롯이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소말리아 해적은 2010년대까지도 기승을 부렸다. 2011년에 우리나라의 삼호주얼리호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다가 청해부대 해군 특수전단이 구조한 적이 있다. 많은 나라 가운데 왜 유독 소말리아에만 해적이 많을까. 소말리아가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자 다른 나라 어선들이 첨단 어선을 타고 와서 소말리아 어민들이 포획하던 참치, 크랩 등의 어자원을 싹쓸이해가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소말리아 어민들이 자경단을 꾸려 경비하다가 외국 선박을 나포해 몸값을 받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적 일이 산업화되는 순간이었다.
소말리아 해적 연봉, 국민소득 160배
해적들은 해적단을 꾸려서 마치 크라우드 펀딩을 받듯 유럽인들을 포함한 외국의 투자를 받았고, 해적단은 그 돈으로 무기를 사서 되도록 많은 인질극을 벌인 다음 몸값을 투자자와 나누었다. 국민소득 500달러 미만인 나라에서 평균 연봉이 8만 달러에 달하는 해적은 아이들이 커서 되고 싶어하는 직업 1순위이자 여자들이 꼽는 최고의 신랑감이 되었다. 이러한 해적 범죄의 주된 원인이 개인의 도덕의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세기에 사회학이 활발하게 태동하기 시작하면서 범죄와 사회적 환경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연구가 시도되었다. 그런 연구들이 활성화되면서 학자들은 사회적 환경이 범죄를 유발한다는 주장을 하나씩 내기 시작했다. 가령 벨기에의 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사회는 범죄를 예비하고 범죄자는 그것을 실천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라 했다.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카사뉴는 “사회는 범죄의 배양기이며 범죄자는 미생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벌해야 할 것은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이다”라고까지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1920년대 시카고 학파를 중심으로 도시화로 새로운 거주자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공동체가 일관된 가치 규범을 제시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범죄 등 사회 문제를 초래한다는 ‘사회해체 이론’, 어떤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 찍음으로써 그에게 내재된 범죄적 성향이 더욱 발현된다는 ‘낙인이론’ 등이 범죄의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 등장하였다. 모두 개인의 책임보다는 사회적 환경이나 관계에서 범죄가 비롯된다고 보는 데 방점이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사회적 환경이 범죄를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백화점의 명품들을 품에 한가득 훔쳐가면서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친 사람들을 구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우리가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는 것은 후자의 인간들이 존재하고 그 수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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