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스파이 출신 지도자
[제3전선, 정보전쟁] 성경으로 본 정보전
사익에 눈먼 정탐꾼들 잘못된 보고
구약의 민수기 기록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지금의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뒤 하나님의 지시대로 가나안 땅(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 정복을 위해 먼저 정탐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의 12개 지파에서 각 1명씩 선발해 정탐팀을 꾸렸다. 그리고 그 땅의 지형·지리, 방어수준 등을 파악해 오도록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12명의 정탐팀은 40일 동안 수집한 정보를 모세와 온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엇갈렸다. 12명 중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이 강하고 장대하며 도시방어도 튼튼해 정복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 2명은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므로 이길 수 있다며 정복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10명의 부정적 보고에 마음이 흔들려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말자는 쪽으로 기울어 결국 모세는 가나안 땅 정복을 추진하지 못했다. 후과는 가혹했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이스라엘 사람들은 40년간 다시 광야를 떠돌아다녀야 했고, 모세를 비롯한 20세 이상 장정은 영원히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 벌을 받았다.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40년이 흐른 후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다시 정탐꾼 파견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세 때와 달랐다. 모세의 정보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은 여호수아는 모든 정탐 활동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정탐꾼의 이름, 신분은 물론 수집한 정보도 자신에게만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규모도 2명으로 단출하게 꾸렸다. 가나안으로 향한 2명의 정탐팀은 이집트 입국 사실이 알려져 쫓기는 신세가 됐으나, 여리고성에 사는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다. 위기를 넘긴 정탐팀은 라합을 통해 여리고성의 값진 정보를 얻었다. 여리고성은 잘 요새화돼 있고 군대도 잘 훈련돼 있지만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집트 탈출과 홍해 횡단 성공에 이어 파라오 군대를 물리친 기백 등을 보고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정보를 보고받은 여호수아는 지체없이 출정하여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도 정복했다. 성경은 이 부분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결과로 보았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정보에 관한 지혜와 교훈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정보리더십 실패를 교훈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1978년 존 카드웰 박사가 『스파이 활동에 관한 성경의 교훈』이란 논문에서 평가한 것처럼, 모세는 정탐꾼 선발부터 실패했다. 선발한 12명의 정탐꾼들은 대부분 정보 전문가가 아니라, 이스라엘 12지파의 차기 지도자가 될 잠재적 정치 지도자들인데, 이들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자신들의 군대와 재산이 차출될 것을 우려해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부정적으로 보고했다. 또한 정보를 공개적으로 보고받은 실책도 범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전쟁하면 진다고 공개적으로 보고하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전쟁 반대 여론이 확산돼 가나안 정복에 실패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모세의 가나안 정복 실패는 하나님에 대한 불복종 때문이지만,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정보 관리의 실패였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를 교훈 삼아 모든 정보 활동을 비밀로 추진하는 등 정보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한발 더 나아가 비록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이지만 정보 리더십 실패에 대해서는 자성과 집단 기억을 통해 이스라엘의 정보력을 튼튼하게 하는 전기로 삼았다. 티샤 베아브 행사가 좋은 예다. 티샤 베아브는 ‘5월 9일’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고대 로마의 이스라엘 성전 파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등 이스라엘 역사에서 불행한 일들이 유대력 5월 9일에 반복해서 발생했다며 이날을 절대 잊지 말자는 엄숙한 기억 행사를 한다. 이를 티샤 베아브 행사라고 한다. 식당과 유흥가는 문을 닫고 서로 웃거나 따뜻한 인사조차 삼간다. 그런데 이 행사의 기원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장정 1만5000명이 매년 5월 9일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유대력 5월 9일을 속죄의 마음으로 보낸다. 한마디로 모세의 정보 리더십 실패를 최초의 역사적 상흔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같은 집단적 기억과 자성은 오히려 이스라엘 사회에 ‘정보는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정보문화를 만들었다. 정보의 중요성에 관한 국민의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브너 바니 교수는 2016년 『미지의 영역 : 유대정신과 이스라엘 정보』라는 책에서 이러한 정보 중시문화가 유대 사회에 뿌리내려 이스라엘 정보력의 기초가 됐다고 평가했다.
물론 성경은 종교적 서사이기 때문에 실록(實錄)에 기초한 실증적 교훈으로 보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방대한 성경의 말씀을 정보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바다 속 좁쌀 한 알처럼 하찮은 것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정보력의 DNA는 수천년간 차별과 핍박 속에서 잉태된 끈질긴 생존 본능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정체성 확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스라엘 정보 지도자들이 성경적 지혜와 교훈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저명 역사학자인 크리스토퍼 앤드류 교수가 2018년 『비밀의 세계 : 정보의 역사』란 책에서, 인류최초의 정보활동 기록인 모세의 가나안 정탐 활동은 종교적 차원의 의미를 넘어 정보의 힘을 사용해 집단의 운명을 바꾸고자 한 중요한 역사적 사례이며, 이후 정보가 이스라엘의 국가운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고구려도 정보전으로 수·당 침략 막아
한 국가의 정보력은 오랜 역사적 경험과 그 사회의 정보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정보에 관한 장구한 역사와 문화가 자연스럽게 그 사회에 뿌리내려 국가 정보력의 튼튼한 기초가 돼 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정보력은 국가위기 때마다 비장의 무기가 되고 있다.
북한발 안보 불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스라엘의 정보 DNA에 대한 부러움을 숨길 수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도 정보에 관한 역사적 자산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수·당의 침략을 막은 고구려의 정보전, 고려말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민정 정보, 일제침탈기 대한제국의 제국익문사, 대한민국 최초의 정보기구였던 대한관찰부 등 우리에게도 정보 문화와 DNA의 형성으로 이어 갈 소중한 경험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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