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정책도 밀어붙이면 불통 역효과"…"정치적 고려로 경제 재단하면 효과 낼 수 없어"

고정애.원동욱 2024. 11.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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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반환점 도는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에 바란다…시민 10명의 호소
권력 시계는 생체 시계와 비슷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기운이 달리는데 시간은 더 빨리 간다. 0.73%포인트 차로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은 20% 밑도는 지지율로 전반부를 마무리한다. 이례적으로 낮은 수치다. ‘거대 야당’이란 된바람 속에서 한·미,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탈원전을 바로잡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윤 대통령 특유의 뚝심이 때론 고집으로 비치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논란은 점차 정권의 급소가 되고 있다. 후반부 2년 6개월, 윤 대통령은 더 시간에 쫓기며 더 어려운 항해를 해야 한다. 거대 야당은 그의 대통령직 수행을 언제든 끝내겠다는 기세다. 역사와 마주 설 그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시민 10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남은 임기, 이것만이라도 해 달라는 호소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검사 윤석열에서 대통령 윤석열이 되기까지 그의 뚝심은 큰 역할을 했다. 공정과 상식을 무기로 난관을 돌파해내는 윤석열 검사의 강한 집념을 우리는 좋아했다. 그러나 수사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오자, 그 고집은 장점보다 단점에 가까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을 두고 국민은 이제 ‘불통’으로 느끼는 듯 하다. 최근 발표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20%(한국갤럽), 24.6%(리얼미터)다. 집권 3년 차 대통령의 지지율치고는 초라한 점수다. 돌이켜 보면 역대 정부가 못했던 굵직한 일도 했다.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한 것, 그 어느 정부도 손대지 않으려 했던 의료개혁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국민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냉담한 것은 ‘불통’으로 비치는 대통령실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예로 의료개혁을 보자.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지지한 국민들도, 2000명을 고집하며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에는 등을 돌리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맞는 11월부터는 더한 난국이 예상된다. 대통령 임기 후반에 국정 동력을 얻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쇄신책을 실천하고, 대통령의 고집이 아닌 집념을 보여줄 시점이다.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경제정책에서 소위 정치적 고려를 빼는 것부터 해 주기 바란다. 예컨대 산업용 전기료만 올리고 가정용 전기료는 올리지 않는 것은 경제정책이 아니다. 정치적, 사회적 배려는 재정으로 하는 것이지 가격(금리도 가격이다)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고려로 경제 문제를 재단하면 경제는 좋아질 수가 없고 경제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제발 좋은 경제 성과를 가지고 정치적 지지를 받을 생각을 해 주면 좋겠다.

경제는 설비·교육·연구개발(R&D) 등 투자에 의해서만 강해질 수가 있다. 투자를 저해하는 모든 규제를 혁파하는데 전력을 다해 주기 바란다.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에 의료까지 얹어서 반드시 이룩하겠다고 하는 것은 가상한 일인데 법을 고쳐야 하는 규제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 걱정이다. 취임사에서 35번이나 언급한 자유(또는 자치)를 더 주는 방법으로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주기 바란다. 임기가 끝날 때 국민이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끼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 정부가 수요를 억눌러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한 조치들이 공급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 임기 중에 부동산 파동이 온다면 끝이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연세대 국제학 대학원 교수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윤석열 정부 중간 평가에서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분야는 외교정책일 것이다. 지난 정부 노선을 전면 전환, 한반도를 넘어 지역적, 지구적으로 국익을 확장하고 남북한 관계 중심에서 한·미관계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여 한·일 관계와 한·미·일 관계 개선을 이끌고자 하였다.

장차 세 가지 도전이 있다. 우선 미국의 패권적 지위 하강이다. 동맹 강화와 한·미·일 협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패권 쇠퇴에 따른 전략적 위험관리를 동시에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동맹 비용을 상당히 치러야 한다. 둘째 아세안과 인도를 필두로 ‘지구 남반부(Global South)’가 뚜렷이 부상하고 있는데 한국 외교는 너무 서방 선진국 중심이다. 신흥경제권을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 외교력을 보태야 한다. 셋째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이 이제 대일·대미·대중 정책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외교가 양극화와 진영논리에 빠지게 되면 대외 협상력이 약화되고 국가의 위신과 평판이 추락하며 심지어 제3자가 은밀하게 정치 개입할 여지도 가져다줄 것이다. 대통령과 외교 당국은 보다 세심하게 인내심을 갖고 야당과 대화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여 초당적 합의를 끌어내는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박일규 음식점 ‘서퍼스 포케’ 운영
박일규 음식점 ‘서퍼스 포케’ 운영
코로나 때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힘들다. 인건비·홍보비 문제, 원재룟값 상승 등 다양한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올 초 벚꽃이 필 즈음 열린 양재천 축제에 푸드트럭의 하나로 참여했는데 홍보 효과가 상당했다. 지역 축제의 특색을 자영업자들과 함께 살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지역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를 확대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구에서 3000원짜리 바우처를 지급받은 손님이 많이 찾아오셨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 비중이 20%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데, 마케팅·CS(고객 서비스) 교육 지원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지 않다.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님들의 불만·요청 사항에 어떻게 응대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물론 자영업자 스스로가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의지가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최소한의 의무 교육이라도 지원한다면 은퇴하고 막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부담이 덜할 것이다.

대부분 자영업자는 모아둔 돈에 대출을 더해 시작한다. 막 장사가 잘되기 시작하더라도 그간 이자 부담 때문에 중도에 접는 경우가 있다. 자영업자 대출과 관련해서 금리를 조금 낮추어 주거나 상환 시기를 연장해 사회적 안전망 꾸리면 좋겠다.


최예진 20대 대학생·외국인 부동산 플랫폼 ‘노워리즈’ 창업
최예진 20대 대학생 외국인 부동산 플랫폼 ‘노워리즈’ 창업
2년 전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그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그전엔 그냥 당연하게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보단 나아졌다지만 많은 학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 보니 어렵게 회사를 취업해도 만족도가 낮고 여전히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대학이 취업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뭘 하고 싶은지 알아나갈 배움터가 되도록 커리큘럼, 연계 사업을 보완해 줬으면 좋겠다. 취업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주변에서 남들이 다 알아주는 기업에 취업하지 않으면 정답이 아니고 실패한 것처럼 바라보는 인식도 학생들을 한 가지 길로 내모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창업 대회, 직업 체험 같은 프로그램을 대학생들에게 제공했으면 좋겠다.

창업하고 싶은 청년들이 막상 사무실을 하나 얻기도 어렵다. 마음이 맞는 학생들끼리 정기적으로 의견을 나눌 공간을 정부 차원에서 도와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최장 1년 6개월의 입주 공간을 지원해 주는 은행권의 ‘디캠프(d·camp)’ 같은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창업하려는 대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용후·김다영 30대 부부
이용후·김다영 30대 부부
결혼한 지 2년 차 부부로 다섯 달 후면 부모가 된다. 임신·출산 진료비와 관련된 바우처들은 생각보다 잘돼 있었다. 그러나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로 1일 2시간 단축)이 불가능한 13~35주엔 현실적으로 산부인과에 가기 어렵다. 퇴근하면 6~7시이고 산부인과에 가려면 자동차로 수십 분 이동해야 해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육아 휴직에 대한 인식·제도 개선은 필요하다고 본다. 대기업은 좀 더 잘돼 있을지 모르지만 작은 기업일수록 직원 한 사람의 공백이 너무 커서 남녀 불문하고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과도하게 눈치 봐야 하거나, 휴직했다가 돌아온 후 업무에서 배제당하거나 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되겠다.

사실 결혼 세태도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우선 결혼식 비용이 하루빨리 투명해져야 한다. 소위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가격은 거의 ‘시가’이고 추가 요금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웨딩플래너별로 합리적 가격 비교가 어렵다. 예식장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서 공공기관들을 예식장 용도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퀄리티가 어떨지 모르겠다. 결혼 예정자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이현경 주부
이현경 주부
우선 아무리 좋은 정책도 충분한 공론화와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면 갈등이 악화하고,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의·정 갈등으로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해 발을 구르는 건 물론이고, 기약 없는 대립 상황에 언제 갈등이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단계별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하루빨리 갈등이 해결돼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념과 고집은 한끗 차이인데 그 경계를 잘 잡지 못하는 듯하다.

채 상병, 김건희 여사 문제 등을 불통으로 대응하는 모습들이 쌓여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펼칠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감정적인 모습보단 대통령다운 배포를 보여주길 원한다. 안 그러면 국민이 아예 등을 돌려버릴 것 같다. 계속 야당과 싸우고, 같은 당 대표와도 불화설이 끊이질 않다 보니 피로감이 몰려온다.

민생 경제에 더 많은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이 와중 집값,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주변에서 김장을 포기해야겠다는 지인들이 많다. 수도권에 있는 집은 분양을 받아도 분양가가 치솟아 돈을 마련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 삶이 어려워지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정진호 중소물류업체 청백에프에스 경영
정진호 중소물류업체 청백에프에스 경영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인력 채용 문제다. 물류 업계는 소위 3D 업종이다. 대기업의 경우 자동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지만, 중소업체는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현장엔 70명 정도 필요한데 10~15명을 늘 뽑아야 한다. 외식배달, 쿠팡 배송 등으로 빠져나가서다. 돈은 더 주고 일은 더 쉽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기업의 미충원 인원 중 90% 이상이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고 알고 있다. 정부에서 외국인 인력을 확대하는데, 이들 고용에도 여러 제약이 있다. 중소기업 구인·구직 플랫폼 활성화, 중소기업 밀집 지역 내 통근버스 운영 및 기숙사 용도의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중소기업 승계다. 아버지가 25년간 일궈온 기업을 아들인 나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류 쪽 학위를 받았고 유사 업계에서 경험을 쌓고 아버지를 도우려 합류했다. 가업상속 공제의 경우 사전요건 및 사후관리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가업의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고 최대 공제를 받기 위해 3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해야 한다는 조건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가업 승계에 부정적인 면모만 부각되는데, 과도한 상속세는 대를 이어 중소기업 하는 걸 불가능하게 해 국가경쟁력을 약화한다.


최옥남 50대 직장인
최옥남 50대 직장인
나는 다행히 내가 원래 하던 경리 일을 필요로 하는 지인을 통해 재취업했지만, 대부분 내 또래들은 그렇지 못하다. 노후를 위해 조금이라도 벌어둬야 하는데 50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의 폭은 매우 좁다. 대부분 청소, 식당 도우미 등이다. 평생 안 해 본 일이라 무작정 뛰어들기 겁나기도 할 것이고, 노동 강도보다 받는 돈이 적다고 느낀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퇴직 후 일회성 일자리에 취직하거나 자영업을 하고, 얼마 안 되어 퇴사 혹은 폐업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국가에서 노후준비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건강관리나 재무설계 등이 주가 되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고용을 연장해 제2의 직업을 찾을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시행하는 재취업교육과 내일배움카드 제도도 보완할 점이 많다. 취업하는데 특성화가 돼 있지 않아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몇몇 프로그램은 단순 자격증 취득 교육을 나열해 놓은 정도다.

주직장에서 퇴직하는 근로자들이 직업교육을 퇴직 몇 년 전부터 받을 수 있도록 바꾸고 이를 확대 시행해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재취업 서비스는 1000명 이상 근무하는 기업에 한정 돼 있다. 이보다 작은 기업의 근로자들이나 프리랜서 등은 ‘각자도생’해야 할 형편이다.


원옥연 60대 국민연금 수령자
원옥연 60대 국민연금 수령자
연금개혁 등 국민을 위한 개혁엔 정치색, 개인적인 감정을 따지지 않고 힘을 합쳐줬으면 한다. 국민연금 30년 이상 가입자로 이젠 연금을 받고 있지만, 직장에 다닐 때 비해 소득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33년간 공기업에서 일하다 은퇴한 남편은 다른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고 있다. 수십 년 지속해온 소비를 갑자기 줄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는데, 국민연금이 그 정도 안정감을 줄 수 있진 않다고 본다. 아마 국민연금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이 연금을 받아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난해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이 60만원 정도라고 들었다.

그나마 우리 세대도 이 정도인데 이제는 한 해 25만여 명 태어난 세대가 70만~100만 명 태어난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나.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은 부모는 없다. 지금 제도대로면 청년들이 국민연금을 위해 돈을 쏟아부어야 하고, 그 돈으로 노년층이 삶을 영위하고 그래서 청년들이 빈곤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아야 한다. 정부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내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할 일이 아니다. 건실한 논의를 할 수 있는 리더십을 양당 모두에 기대한다.

고정애·원동욱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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