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가 나오미를 탐구한 이유
나오미 클라인 지음
류진오 옮김
글항아리
나의 분신인 듯 나와 똑 닮았는데 실상은 나와 전혀 다른 존재를 만난다면. 이른바 도플갱어와의 만남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듯 기이하고 섬뜩한 경험이자,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다. 한데 지은이 나오미 클라인(1970~)이 제목부터 『도플갱어』인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현실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앞서 한국에도 번역된 『노 로고』 『쇼크 독트린』 등의 저서로 유명한 그는 캐나다 출신의 좌파이자, 저널리스트이자, 운동가다. 미국 대선 때는 버니 샌더스 캠프에 참여했다.
숱한 사람들이 이런 그와 헷갈린 또 다른 나오미도 백인 여성이자 유명인. 나오미 울프(1962~)는 한국에도 번역된 여러 저서를 통해 페미니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은이의 당혹감을 이해하려면 이 정도 소개로는 부족하다. 최근의 울프는 무엇보다 백신 관련 음모론을 비롯해 각종 음모론을 예사로 주장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지은이는 울프의 각종 주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자신에게 보내오는 혼동을 넘어, 자신의 책 제목에 울프의 주장을 결합하는 식의 ‘혼합’까지 목격한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가소롭고, 가소롭다기에는 너무 심각하다”. 작가 필립 로스가 도플갱어를 다룬 소설 ‘샤일록 작전’에 쓴 말이다. 사람들의 혼동에 대해 지은이의 초기 반응은 “그 나오미가 아닙니다”라고 소셜미디어 소개 글을 적는 정도였지만, 갈수록 자신의 도플갱어, 또 다른 나오미를 진지하게 파고든다. 심지어 트럼프의 책략가이자 극우 선동가인 스티븐 배넌의 방송까지 애청한다. 페미니스트이자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자로, 트럼프가 싫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울프가 어느덧 배넌 방송의 단골 출연자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두 나오미를 사람들이 헷갈린 것이 아주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다. 팬데믹 시기 울프는 음모론의 관점에서 빌 게이츠를 비판했다. 지은이도 빌 게이츠를 비판했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백신 개발의 특허권을 주장하는 제약회사와 한 편에 섰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이 책이 지적하듯, 극우적 주장과 음모론은 민권 운동의 구호와 주장을 서슴없이 차용하곤 한다. 지은이는 좌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비판한다. 특히 극우적 음모론이 배태되거나 파고든 지점이 좌파 운동권이 외면하거나 체념한 지점과 종종 맞물린다는 것을 지적한다.
책에는 울프의 이력이 어떤 부침을 겪었고, 극우 음모론과의 결합이 그에게 어떤 새로운 활로가 되었는지가 상세히 드러난다. ‘대각선주의자’는 이런 행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용어. 지은이는 자신이 살아온 이력 역시 전하면서 디지털 세상이 요구하는 개인의 브랜드화를 비롯해 도플갱어에 대한 사유를 펼쳐나간다.
이와 함께 백신 음모론을 주장한 이들의 배경과 생각, 자폐에 대한 관점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한편 나치 시절 숱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의사의 양면성, 나치 이전에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나 신대륙 원주민들의 절멸을 당연시했던 서구의 역사와 관점, 그리고 유럽에서 배척당하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들을 배척하는 현실과 이른바 ‘도플갱어 정치’ 까지 다뤄진다. 디지털 자아, 이상화된 신체로서의 자아, 인종주의를 투영한 자아, 편견이 만들어낸 분신 등을 지은이는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세상과 관계를 직시하지 않게 하는 것, 책의 표현을 빌리면 ‘아니 보기’를 불러오는 것으로 비판한다. 출발은 개인적 경험이되, 개인적인 동시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글쓰기의 수준급 솜씨와 함께 양극화된 세상에 대해 유려하고 신랄한 식견을 보여주는 책이다.
사족으로, ‘나오미’란 이름에서 수퍼 모델 나오미 캠벨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터. 지은이가 그 덕을 본 일화도 나온다. 사족은 아니지만, 지은이와 울프의 오래전 인연 역시 눈길을 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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