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영화 속 과학] ⑤의식의 기원을 탐구하는 노력…'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2017)'
[편집자주] 공상과학소설(SF) 영화에 등장하는 놀라운 첨단 과학기술은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기술의 힘을 빌린 영화 속 주인공은 현실세계의 우리들보다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기도 하고 때때로 기술이 일으킨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고뇌에 빠지기도 합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러한 영화 속 상황을 곧 현실로 이끌어냅니다.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던 첨단 기술이 우리 삶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이러한 기술들이 우리 삶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2017년 개봉한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은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진 미래를 다룬다. 인간과 인공지능(AI)이 결합해 탄생한 특수요원인 주인공은 테러 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두뇌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체를 기계 장치로 대체했지만 인간 고유의 자아와 영혼을 유지한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은 기계 신체와 인간의 마음 중 어느 쪽이 자신을 규정하는지 고뇌한다. AI로 만들어진 자아를 지닌 등장 인물은 자연적으로 의식을 형성한 인간과의 차이를 찾기 위해 방황하기도 한다. 인간과 기계 사이 존재의 다양한 양상을 그려낸 영화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인간을 모사한 기계의 차이는 의식으로 여겨진다. 의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 아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구별하는 데 중요하다. 이같은 형이상학적 논의는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대에서 더욱 중요하다. 점점 더 정교한 AI와 로봇이 등장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을 아는 것은 더 이상 영화 속 고민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혼수상태 등 의식을 잃은 환자의 상태를 더욱 정밀하게 분류하기 위해서도 의식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 의식의 기원을 다룬 과학적 이론들의 대결
의식의 기원을 찾는 연구는 26년 전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 미국 앨런뇌과학연구소 소장과 철학자인 데이비드 차머스 미국 뉴욕대 교수의 내기로부터 시작됐다. 코흐는 수 십년 내 의식의 존재를 특정할 수 있는 뇌 신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AI가 인간의 뇌를 모방해 의식이라고 지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공의식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차머스는 '어려운 문제'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의식의 형성을 단순한 뇌의 물리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AI가 아무리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가지게 될지라도 감각을 통한 주관적 경험(qualia)를 지니지는 못할 것이라고 맞섰다. 지난해 내기의 중간 결과는 차머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의식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의식의 기원을 설명하는 강력한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의식을 뇌 부위에서 정보를 통합하는 '신경 연결 메커니즘 구조'로 보는 통합정보이론(IIT)이다. 다른 하나는 의식을 감각기관에서 발생한 신호가 뇌영역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는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GNWT)이다.
IIT는 생물은 '내재적인 인과적 힘(intrinsic causal power)'을 가진 생물은 모두 의식을 지닌다고 본다. 이는 외부적인 환경이나 영향에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갖는 특성을 의미한다. 외부의 개입과 분리된 조건에서 주관적 경험을 통해 원인과 결과의 구조로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체계를 갖는 것이 바로 의식의 핵심이란 설명이다.
이러한 이유로 IIT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생물이나 실제 유기체를 본따 만든 인공물은 의식을 지닐 수 있지만 AI는 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본다. AI가 갖춘 지적 능력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래머, 외부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체계이기 때문이다. AI가 의식을 갖기 위해선 만들어진 알고리즘이 아닌 본질적인 특성을 통해 외부세계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의식의 작용은 감각을 통한 주관적 경험의 결과물을 낳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주관적 경험은 무한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외부 세계와 더 많은 인과 관계를 맺을 수록 강력한 의식이 있는 것으로 본다. 강력한 의식을 지닌 대표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IIT는 현재 존재하는 의식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 중 가장 유력한 이론으로 꼽힌다. IIT는 내재적인 인과적 힘이 발현되는 체계를 뇌 부위에서 정보를 통합하는 '신경 연결 메커니즘 구조'에 있다고 본다. 신경들이 연결된 구조가 곧 의식을 형성하는 체계란 것이다.
2023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의학과학연구협회 학술대회(ASSC)에선 IIT를 뒷받침하는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 뇌혈관조영술, 뇌 표면 전극 삽입을 통해 특정한 판단을 내릴 때 인간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분석 결과 실험 참가자들이 특정한 판단을 내릴 때 뇌의 신호는 감각처리 기능이 모여 있는 뇌 뒤쪽의 후측피질에서 강하게 발생했다. 인간이 의식의 기능을 사용할 때 주관적 경험으로 비롯된 결과물이 처리하는 뇌 활동이 활발해진 것으로 IIT를 지지하는 결과였다. GNWT는 의식이 작용할 때 사고력과 주의력을 담당하는 뇌의 앞쪽 전두엽 피질의 기능이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 인간의 뇌 기능을 한계까지 대체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인간의 의식과 기계의 의식의 차이를 구별하기 위한 단서는 앞으로 더 구체화될 전망이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다. 공상과학소설의 '전자두뇌'에 빗대어 표현되는 BCI 기술은 기계가 자연적인 뇌의 기능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BCI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판단을 분석해 이를 물리적인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을 해석하고 이행하는 기술이 어디까지 정교해질 수 있는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의식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의식 구조의 차이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여겨진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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