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 ⑨] 세 개의 선(線)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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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갤러리 그리브스에 들렀다.
세 개의 선은 어쩌면 자동차 도로의 차선 같은 것이다.
넘어선 안 되는 것도, 넘나들어야 하는 것도 있는데 헛갈리면 대형 사고다.
한두 번은 봐준다고 해도, 세 번을 반복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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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못지키면 신뢰 잃게 돼
반대로 배움엔 한계선 없어
지킬 선, 넘을 선 잘 구분해야
얼마 전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갤러리 그리브스에 들렀다. 입구에 있는 3개의 선(線)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지키기 위해 넘을 수 없는, 넘어야 하는 선들. 생각은 풍경처럼 흘러갔다. 삶에도 선들이 있다, 일상(日常)은 전쟁이니까. 어렵지 않게 세 개를 골라냈다.
첫 번째 선은 돈에 대한 것이다. 첫 직장인 은행에서 배운 것인데, 기한이익상실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자를 제때 못 내면 원금까지 회수당한다, 일부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전부가 깨진다는 뜻이다.
돈거래를 하면 날짜는 꼭 지켰다. 못 하면 못 한다고 반드시 미리 알려 이해를 구했다. 세금은 아무리 억울해도 납기일을 넘기지 않았다. 벤처 사업하다 망했을 때도 딸아이 돌반지를 팔지언정 연체는 피하고자 했다. 오래전 독일의 철학자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이 '돈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랬다. "돈 계산이 생활 영역 속에 침투함으로써 훨씬 더 큰 정확성과 경계성이 심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두 번째 선은 일에 대한 것, 특히 데드라인(마감)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신문사에서 몸빵으로 배운 것이다.
데드라인을 어기면 신뢰는 깨진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와 빌 레지어는 'Be 2.0'에 신뢰가 붕괴되는 두 가지 상황을 적어뒀다. "하나는 그 사람의 역량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인성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이라고. 무능한 사람은 유능하도록 도울 수도 있지만,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악용한다면 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고도 했다.
회사 임원이나 사장으로 직원들을 평가할 때에도 완성도보다는 데드라인을 먼저 고려했다. 세 번 어기면 (마음속에서) 아웃시켰다.
데드라인은 고통이다. (사람은 개와 달리) 고통이 과하면 포기하기 십상이다.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는 '어느 개의 죽음'에서 이렇게 썼다. "자연이 악착같이 괴롭혀도, 주인이 버려도, 동족들이 공격해도" 개는 지킨다고.
세 번째 선은 배움에 대한 것이다. 때늦은 학교생활에서 새삼 깨달았다, 배움에는 정해진 선이 없다는 것을. 왼쪽 오른쪽도 없고, 먼저도 나중도 없다. 기억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 된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백곡 김득신이었나, 같은 책을 천 번 만 번 읽었다는 그분 말이다. 쉰아홉에 문과 급제했다.
배움에 관한 한 처음부터 느슨하게 세팅하면 여유가 더 생긴다. 이자켓의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의 뒤표지엔 '구성품: a, b, 레버'란 글이 붙어 있는데 맨 마지막 문장이 머릿속에 콕 박혔다. "연결 후, 흔들리도록 느슨하게 풀어두십시오."
세 개의 선은 어쩌면 자동차 도로의 차선 같은 것이다. 넘어선 안 되는 것도, 넘나들어야 하는 것도 있는데 헛갈리면 대형 사고다.
기한이익이나 데드라인을 무시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라. 한두 번은 봐준다고 해도, 세 번을 반복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다른 누구도 그런 족속에게 당할 수 있으니 적어도 세 사람 이상에게 조심하라고 알려라.
배우는 데 나이를, 노안을 탓하지 말라. 잘 안 보이면 들으면 되고, 잘 안 들리면 그려보면 된다. '픽션들' '알레프'를 쓴 현대문학의 거장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시력을 잃고서도 듣고 생각하고 기억했다. 그렇게 상상력을 펼쳤고, 계속 작품을 만들어냈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서쪽 하늘에 석양이 걸려 있다. 마윤지의 시 '해안순환도로'의 마지막 구절 같다.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요 / 다음엔 하루 묵고 가세요"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어제 올 걸 그랬다.
[김영태 전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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