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에게 돌려주세요…“도토리 주워가면 범죄입니다”

가을철 임산물 무단채취 기승
매년 형사입건도 100건 이상
‘불법채취 집중단속’ 펼치고
경고문 붙여놔도 아랑곳 없어
야생동물 도심 출몰 원인 지적도

연세대 청송대에 붙은 도토리 무단 채취 금지 경고문. [지혜진 기자]

서울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내부 숲인 청송대에는 “노(NO) 줍지 마세요 도토리(DOTORI) 숲속에 양보하세요”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도토리를 주워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경각심을 주기 위해 붙인 경고문이다. 해당 구역에서 도토리 채취가 불법인 이유도 있지만 다람쥐나 청설모, 곤충 등 서식하는 동물들이 가을을 나기 위한 먹이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하지만 숲을 찾은 사람들은 현수막 문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한 70대 여성은 도토리를 주워 어디다 쓸 것이냐고 묻자 “도토리를 말려 가루로 만들어 도토리묵이나 전을 해 먹으려 한다”고 답했다.

연세대 청송대에서 한 70대 여성이 도토리를 줍고 있다. [지혜진 기자]

이 숲에서는 가을철인 9월부터 11월 초까지 이른 아침 시간에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주로 도토리를 주워간다. 학교 경비원인 박모 씨(56)는 “도토리를 주우면 안 된다고 계속 경고해도 등산 가방과 비닐봉지 한가득 도토리를 채워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학생들은 지난 2017년부터 ‘연세 도토리 수호대’(연도수)라는 조직을 만들어 도토리 저금통을 설치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연도수에서 활동 중인 오경택 씨(24)는 “매일 한 시간씩 단속을 도는데 평균 10명 이상씩 적발되고 주운 도토리를 반납해 달라고 해도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며 “단속요원들을 피해 도토리를 줍는 조직적 활동을 보인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연세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연세 도토리 수호대’에서 만든 도토리 저금통. [지혜진 기자]

가을철을 맞아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도토리, 밤 등 임산물을 무단채취 하는 경우도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임산물 무단 채취는 사유림 뿐만 아니라 국유림에서도 법적으로 금지된 범법 행위다.

산주의 동의 없이 임산물 불법 채취를 할 경우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입산 통제구역 무단입산 시에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불법소각 시 5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임산물 불법채취로 형사입건된 수는 2020년 170건(223명), 2021년 149건(232명), 2022년 128건(178명), 2023년 165건(204명) 등으로 꾸준했다. 올해도 6월까지 58건(63명)이 형사 입건됐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한라산, 여수 오동도를 제외한 국립공원에서 임산물 불법 채취가 단속된 건수는 총 27건이다.

임산물 무단채취가 조직화되자 각 지자체와 국립공원에서도 가을철 임산물 무단채취 집중단속에 나서며 고삐를 조이고 있다. 계룡산국립공원은 오는 3일까지, 충남 서산시는 오는 6일까지, 속리산국립공원은 오는 12일까지 임산물 채취 집중단속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산림청 관계자는 “가을철에는 밤·도토리·잣, 봄철에는 산나물 불법채취가 기승을 부린다”며 “본인 소유의 땅이 아닌 이상 임산물을 채취하는 것은 불법이고 전부 압수되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세 도토리 수호대’의 도토리 저금통에 등산객들이 모아둔 도토리. [지혜진 기자]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임산물 채취가 숲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야생동물들이 도심으로 내려오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팀장은 “도토리는 다람쥐, 청설모 뿐 아니라 멧돼지, 고라니, 반달가슴곰 등 대형 포유류의 중요한 먹이라서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워가 먹이가 부족해지면 동물의 개체 수가 줄고 이 동물들을 사냥하는 삵, 담비, 새와 같은 상위 포식자도 피해를 입는다”며 “먹이가 부족한 동물들이 민가로 내려와 농경지에 피해를 입히거나 도심에 출몰하는 등 인간도 다양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