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2045년 탄소중립’ 발목 잡는 현대제철
국내 최대 완성차 기업 현대자동차(현대차)가 “2045년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으나, 핵심 소재인 철강을 공급하는 계열사인 현대제철의 ‘탈탄소’ 준비가 미흡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은 지난 31일 ‘현대제철의 미흡한 탈탄소 로드맵, 현대자동차 탄소중립 제동 거나’ 보고서를 내고 “현대제철은 2030년 이후의 탄소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현대차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어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완성차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현대차는 자동차 생산과 운행, 폐기까지 전 수명주기에서 탄소발자국을 2030년에는 10% 이상, 2035년 40%, 2040년 60% 감축하고, 2045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내걸고 있다.
자동차 무게의 30~50%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소재인 ‘강재’는 자동차 제조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데, 제철회사들은 그동안 화석 연료를 태우는 고로로 철강 제품을 만들며 막대한 탄소를 내뿜어왔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지난해 4월 고로(용광로 이용) 쇳물과 전기로(전기 에너지 이용) 쇳물을 섞는 ‘합탕’ 방식을 써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12% 줄이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탄소중립 로드맵을 내놨다. 그러나 보고서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고로를 유지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고 그 외 실질적인 탈탄소 전략이 없다”며, 현대차 전체 자동차용 강판의 60~70%를 공급하는 현대제철의 미흡한 탈탄소화 계획이 현대자동차 전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금 계획대로라면 현대제철이 “2050년 이후에도 1기 이상의 고로 설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고로 수명이 15~20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대제철의 400만톤급 고로 3기 모두 개수(설비 교체) 시기가 얼마 안 남았지만, 현대제철의 탄소중립 로드맵에는 고로 설비 전환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고로를 유지하면서 2030년 12% 탄소 감축 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현대자동차의 경쟁사들은 구체적인 탈탄소 전략 아래 탄소중립을 실행해 가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들도 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미국 생산 공장에서 사용 강재의 3분의 1 이상을 재생에너지 발전원으로 만든 ‘탈탄소’ 강재로 쓰고 있다. 지난해 3월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사 차량 수명주기 탄소배출량을 대당 3.4톤 저감했다”고 밝힌 바도 있다. 볼보 트럭도 바이오가스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저탄소’ 강재를 트럭 프레임에 적용해 탄소배출량을 혁신적으로 저감했다. 보고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볼보 트럭 사례의 핵심은, 이때까지 고로에서 만든 강재를 사용했던 승용차 차체와 상용자 프레임 레일 부분에 재생에너지로 만든 스크랩-전기로 강재를 활용해 탄소배출량을 혁신적으로 저감했다는 것”이라 평가했다. 또 “이런 부품들을 재생에너지 기반 ‘녹색철강’으로 대체했다는 것은 탄소경쟁력이 월등히 앞선 것으로, 고로 강재 비중이 높고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낮은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제조한 자동차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제철은 로드맵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2030년 이후”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2030년까지 12%를 저감하는 데에 재생에너지는 주요 수단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도 짚었다.
더 나아가 현대제철이 탄소 감축 실적을 일부 제품에 할당시켜 저탄소 제품을 인증받는 ‘북앤클레임’ 방식을 쓰겠다고 밝힌 데 대해, 보고서는 이것이 “심각한 ‘그린워싱’이 될 수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앞서 포스코가 시행해 비판을 받은 ‘매스밸런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매스밸런스’는 철강 제품 6개를 생산할 때 나오던 탄소배출량을 5개 생산할 때의 양으로 줄였을 때 1개의 제품을 ‘탄소배출량 0’ 제품으로 만드는 것으로, 실제보다 더 많은 탄소를 줄인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 고로와 전기로를 함께 쓰는 ‘합탕’ 강재에 ‘매스밸런스’ 방식을 적용하면 “탄소저감량이 큰 제품은 적극 홍보하여 상대적으로 탄소저감량이 처지는 제품도 깨끗한 것처럼 광고”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1일 “올해 상반기에 ‘북앤클레임’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고, (탄소 저감을) 특정 제품에 맞춤형으로 적용하는 ‘피지컬’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보고서는 “탄소배출량을 근거로 한 국제무역질서가 확대·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현대차의 주요 소재 공급업체인 현대제철이 적시에 탄소를 저감하지 못하면 현대차 또한 ‘공급망 탄소중립 로드맵’을 달성할 수 없고, 현대차가 경쟁사 수준의 탄소배출량 저감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수출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제철은 고로 보수 및 개선, 폐쇄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에 대한 계획과 이에 요구되는 그린 수소 조달 방법 등 탈탄소 로드맵을 더 명료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은 기후솔루션 철강팀 팀장은 “한국과 비슷한 철강 구조를 가진 일본은 지난달 철강업계와 자동차업계, 건설업계, 정부, 투자자와 소비자단체 등을 모두 모아 녹색철강 시장 조성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라며 “한국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철강사와 정부, 수요 산업 등이 녹색철강 시장 형성을 위한 논의에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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