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경제와 2025년 예산[김유찬의 실용재정](47)
2024년 8월, 정부는 2025년에 집행될 정부 예산안을 제시했다. 세 가지 중점 목표로 민생, 경제의 경쟁력 제고와 사회구조개혁 그리고 재정 운용의 혁신을 강조했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 열린다. 어려운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예산이 되도록 국회의 선량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해 본다.
정부는 2025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를 전년 대비 3.2% 증가한 677조4000억원으로, 총수입 규모는 전년 대비 6.5% 증가한 651조8000억원으로 편성했다. 국가채무는 202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47.4%에서 48.3%로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총지출 증가율(3.2%)은 전년도(2024년·2.8%)보다 소폭 늘어났다. 2025년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2.1%라는 것을 고려하면 실질증가율은 1.1%에 그친다. 재량지출의 실질증가율은 ‘-1.3%’로 오히려 줄어든다.
사회 위기 악화시키는 긴축 예산
2023년 국세 수입이 예산보다 60조원이 적은 커다란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이후 2024년의 국세 수입 재추계 결과도 예산대비 30조원이나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추계해 제출한 2025년의 국세 수입 규모는 382조4000억원으로 2024년의 예산안(367조3000억원)보다 15조1000억원 많다. 전술한 바와 같이 2024년의 국세 수입은 예산안에서 추계한 367조3000억원보다 30조원 정도가 부족할 것으로 재추계됐다. 이제 관건은 2025년의 국세 수입이 2024년에 실제로 걷힐 것으로 전망되는 337조원보다 45조원이나 더 많이 걷혀 2025년의 세입예산에 큰 차질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의 세수입 차질은 2023년 기업영업이익의 하락 폭이 컸기 때문이며 이후 법인의 실적이 개선되면 2025년의 세수입 예산 확보에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인 세수의 대폭 감소가 경기침체 여파와 함께 통합투자세액공제 등 법인에 제공된 대폭의 감세 때문이라면 2025년에도 법인세 감소 효과는 여전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회는 여러 층위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데 이중 가장 커다란 위기는 불평등의 위기와 기후위기다. 단기적으로 경기침체도 심각한 상황이다.수출주도의 경제모델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수출이 부진하니 내수는 실종하고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예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런 문제점을 조금씩이라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해결은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뚜렷한 긴축적 성격의 예산안으로 한국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단기의 경제 안정화 정책은 성장의 지속가능성과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단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넘어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보다 긴 시계에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중복지-중부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추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세수확충이 필요하다. 누진적 보편증세의 세수확충을 위한 로드맵을 설정하고 착실하게 실행해 나가야 한다. 조세 및 공적 이전소득을 통한 불평등 감소 효과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31.1%인데 한국은 18.3%로 거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2025년 예산안에서 나타나는 분야별 예산배분액을 살펴보면 보건복지 고용 분야의 예산은 전년 대비 4.8% 증가로, 2023년 예산 증가율(7.5%)에 비교하면 증가세가 반감됐다. 문재인 정부 동안 보건복지 고용 분야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10.8%)과도 격차가 크다. 국가과제를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정부가 정작 복지예산에서는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4년 예산안에서 논란이 됐던 연구개발(R&D) 분야의 예산은 2025년 29조7000억원으로 편성돼 전년 대비 11.8%(3조2000억원) 늘었다.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분야다.
정부는 역대 최대 물량인 25만호가량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정작 공공주택 부문 예산은 전년보다 3조2000억원 삭감된 14조9000억원이 편성됐다. 민간중심의 주택공급을 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 것이다. 신생아특례 대출의 소득요건을 완화하고 청년주택드림 대출을 늘리는 데에는 각각 6585억원, 7507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되는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대출 예산을 늘린 것이다. 반면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금융지원 예산은 전년 대비 미미한 증액(소상공인 채무조정 1700억원, 소상공인 지원 600억원)에 그쳤다.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경제성장 발목
지방자치단체들과 지방 교육단체들은 국세의 일정 부분을 중앙정부에서 교부금 재원으로 받아와 재정을 운영한다. 중앙정부의 실제 국세 수입이 세입예산보다 많은 경우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결산 이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생긴다. 그러나 2023년, 2024년과 같이 중앙정부에서 세입결손이 발생한 경우 교부금이 줄어 지방정부는 당초에 편성한 예산을 집행할 재원이 부족하게 된다. 재정안정자금의 여유가 없는 지자체의 경우 지방채를 발행해야 할 것이다. 채권시장에서 지방채의 발행은 높은 금융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국세 결손으로 인한 지방정부의 재정적 어려움에 대해 중앙정부는 방관하지 말고 실용적인 해결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2025년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민생의 활력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예산안은 건전재정도, 민생도 모두 잃은 최악의 긴축 예산안이다. 정부 스스로 지키지도 못할 재정준칙에 가로막혀 취약계층과 영세 자영업자, 서민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외면했다. 재정준칙은 지출을 줄이는 방법뿐 아니라 세입을 확충하는 방법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 세입확충을 통한 적극적 재정 운용 기조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세법개정으로 인한 감세 효과가 효력을 발휘하면서 세수입이 부족해지고 부족한 세입예산의 상황은 긴축재정 기조와 함께 재정지출의 규모를 옥죄어 경제활력을 위해 필요한 곳에 재정의 역할이 닿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세수 부족에 시달리면서 지출을 제약하기에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경제성장률을 오히려 끌어내린다.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 효과가 본격화되고, 경기 전망도 좋지 않아 세수 부족이 장기화할 것이 우려됨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를 넘어설 세입확충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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