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피어나게 할 수도 지게 할 수도 있는 스크린[IT 칼럼]

2024. 11. 1. 1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Unsplash, Gaelle Marcel



두 가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의 걱정이 부딪힐 때가 있다. 디지털로 점철된 일상에서 자라나가야 하는 학생들에 대한 걱정이다. 어린 학생이 휴대전화를 통해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맛보고 절망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휴대전화가 학생을 일깨워 희망을 건넬 수도 있어서다.

과도한 스크린 타임(휴대전화를 보며 보내는 시간)이 학생들의 정서건강은 물론 신체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건 굳이 연구 사례를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부모라면 느끼고 있을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통제가 되지 않는 스크린 타임이건만 최근 공교육이 공식적으로 스크린을 나눠주고, 또 의무화하려는 시도를 보이니 학부모들이 뿔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과하게 스크린에 의존하게 되지 않나 걱정하는 일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각국은 너나 할 것 없이 강한 규제를 만들고 있다. 호주와 프랑스를 필두로 싱가포르, 핀란드, 중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교내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라는 입장을 최근까지 10년 넘게 유지해왔다. 이 결정은 지난 10월 7일 인권위에서 뒤집혔는데, 이에 영향을 줬다고 알려진 유네스코 보고서는 아예 세계적인 금지를 촉구했다. 학업 성과와 기술 사용에는 부정적 상관이 있다는 취지였다. 예컨대 공부할 때 휴대전화 알림이 울리기만 해도 집중력을 잃고 다시 회복하는 데 20분이 걸린다는 식이다. 이미 미국도 유타주를 시작으로 텍사스, 아칸소, 오하이오, 뉴저지 등으로 이어졌다.

입법이 움직이는 데는 아이들의 정서적 문제에 대한 걱정이 결정적이었다. 사실 교내에서 심심하면 서로 얘기라도 할 텐데 휴대전화가 있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으니 점점 삭막해져 간다. 노르웨이는 알고리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며 15세 미만은 소셜네트워크 이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스크린이 인지적·사회적 발달 과정에 악영향을 미쳐 학업 성적은 물론이고, 언어 능력과 신체 능력까지 저하한다는 연구도 잇따랐다. 단순히 눈이 침침하고 거북목이 되는 문제를 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만은 2세 이하에 디지털 기기를 일정 시간 이상 보여준 부모는 약 200만원의 벌금에 처하는 ‘강수’마저 뒀다.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식당에서 동영상 튼 휴대전화를 쥐여주며 조용하게 하던 우리네 부모들은 뜨끔할 이야기다.

그런데 성장기엔 스크린을 아예 다 금지해 버리면 될까 싶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스크린이 격차를 만드는 결정적 도구가 되고 있어서다. 예컨대 ‘노트북LM’이라는 구글의 충격적 인공지능(AI) 서비스는 교과서를 올리면(업로드) 요약해주고, 문제를 내주고, 요점을 분석해준다. 심지어 ‘팟캐스팅’(인터넷 방송)까지 만들어 들려주며 몰입하게 만든다. 앞으로는 어떤 족집게 AI를 잘 골라 쓰는지에 따라 학습 격차가 벌어질 터다.

학생들은 뭘 어떻게 배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 가늠하지 못하곤 한다. 두꺼운 교과서와 참고서의 산더미 앞에서 지금까지는 일대일 과외 선생이나 해줄 수 있던 길라잡이의 역할을 인터넷이 해줄 수도 있다. 쓰레기 더미 유튜브 속에도 아이를 각성하게 할 보석 같은 콘텐츠는 곳곳에 숨어 있다.

손바닥만 한 스크린은 아이를 망가뜨릴 수도, 피어나게 할 수도 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건 교사와 부모 등 함께 취사선택해줄 수 있는 어른들의 존재다. 아이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띄워줄지에 따라 격차가 벌어지는 시대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