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아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승부수 띄워야 할 때다 [쓴소리 곧은 소리]
검찰 칼끝 언제든지 방향 틀 수 있어…김영삼, ‘대선 1등 공신’ 아들 감옥 보내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라고나 할까.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임기 절반을 기점으로 맥없이 꺾이거나 반대로 힘차게 치고 올라갔다. 그렇다면 11월10일로 임기 반환점을 도는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쪽일까. 솔직히 국정 지지율 20%대가 3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을 터다. 레임덕(Lame Duck·권력누수)은 원래 '뒤뚱거리는 오리'가 아니라 '사냥꾼에게 총 맞고 절룩거리는 오리'라는 뜻이었다. 총 맞은 오리를 방치하면 '피 흘리는 오리'(Blood Duck·권력이반)가 되고, 그마저 버려두면 '죽은 오리'(Dead Duck·권력붕괴)가 되고 만다. 우리 대통령들의 레임덕 현상을 분석한 책 《레임덕 현상의 이론과 실제》를 필자가 쓰면서 느꼈던 점은 레임덕은 한번 작동하면 물귀신처럼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 발목을 잡아당긴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제라도 그런 사태를 막고 튼튼한 오리(Strong Duck·권력 정상화)로 거듭나려면, 맨 먼저 '김건희 여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민심은 지금 김여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돼버렸다.
'김건희 문제'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건가
11월은 안팎으로 폭풍 한파가 몰아칠 것 같다. 당장 11월5일 미국 대통령선거, 북한 폭풍군단의 우크라이나 파병, 명태균의 연쇄 폭로, 민주당의 윤석열-명태균 녹취록 공개, 11월15일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선고와 11월25일 위증교사 1심 선고, 야권의 탄핵집회 확산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한꺼번에 덮치면 윤 대통령의 김 여사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국민의힘에서는 윤 대통령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한동훈 대표는 10월30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이어 연일 "우리가 주체가 돼서 개선책을 내놓야 한다"며 특별감찰관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친윤계 중진들도 '용산의 국정쇄신'과 '결자해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여권 일각에서는 조만간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 등에서 김 여사 문제에 대한 진솔한 사과, 활동 자제, 제2부속실 부활 같은 해법들이 잇따라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흘린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면 과연 대통령이 그런 조치를 취할지, 조치가 있더라도 민심이 수습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야말로 살을 베어주고 뼈를 자르겠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해법이 아니면 백약이 무효인 현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도대체 윤 대통령은 민심을 못 읽는 것일까? 아니면 민심을 읽고 해법도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걸까? 처음에는 전자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후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단초는 윤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와의 회동 다음 날인 10월22일 부산 범어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겠다"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김 여사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아무리 거세도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게다가 '업보(業報)'라는 말이 자신이나 조상이 죄를 저지르면 훗날 자신이나 후손이 죄값을 치른다는 뜻이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혹시 디올백 문제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그리고 명태균 파문 등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내에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인가?
만약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대선후보가 되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김 여사가 잘못을 했더라도 큰소리를 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드러난 것만 봐도 김 여사는 인맥이 넓고 나름대로 정무 감각이 있으며 권력의지도 하늘을 찌른다. 게다가 주변에 자신의 무고함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김 여사가 지난 7월 개혁신당 대표인 허은아 대표와의 통화에서 1시간 넘게 억울함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는 것을 보면, 남편에게는 10시간, 100시간 이상 하소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한동훈 대표에게 켜켜이 쌓였던 김 여사의 불만과 분노는 고스란히 남편에게 전달되었고, 그게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 바로 10·21 용산 회동이었다고 본다. 이날 냉대를 받은 한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을 더 이상 방어하기 힘들다'는 식으로 은근히 압박을 가했지만 윤 대통령은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할 테면 해보라'는 반응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취해야 할 5개 조치
연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명태균 파문과 관련해서도 "몇 번 만났지만 나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단호히 잘라냈다"면서 "집사람이 달래서 좋게 좋게 선거를 치르려고 했던 것이며 그게 가족의 역할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안마다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단칼에 무 자르듯 잘랐다. 사실 한동훈 대표도 자기정치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친화력과 정치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시점과 상황이 지나버렸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후통첩과 함께 '마이웨이'를 공개 선언한 셈이다.
지금 윤 대통령 부부가 처한 상황은 점입가경에 첩첩산중 진퇴양난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은 20%대와 10%대가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 윤 대통령과 여권은 차선책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면하는 전략을 짜야 할 판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흑역사를 보면 부인·아들·딸·형제들이 온전했던 대통령이 거의 없었다. 군내 사조직을 단숨에 박살내고 검찰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자부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말에 대선 1등 공신이었던 아들을 속절없이 감옥에 보내야 했다.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고 주변 관리에 철저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말에 두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말았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대통령은 한결같이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설마" 했다. 이들은 또 '검찰의 칼끝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불편한 진리'를 애써 외면했다. 좀 더 일찍, 좀 더 빨리, 좀 더 과감하게 대처하면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 대통령의 가족 문제다. 윤 대통령도 늦었지만 지금이 그럴 시점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지옥 같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천국 같다'는 말이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말을 새기고 아내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승부수를 띄우기 바란다. 적당한 미봉책으로는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임기 반환점에서 성난 민심을 달래고 상승세를 타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대책이 동시에 속사포처럼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①윤 대통령의 감동적인 대국민 메시지 ②김 여사의 진솔한 대국민 사과 ③영부인 활동의 잠정적 중단 ③신뢰감을 주는 제2부속실 출범 ④특별감찰관제 도입 ⑤'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여당의 판단 존중이 그것이다. 5대 해법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윤석열-김건희-한동훈 3인 트리오의 신뢰 회복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부디 윤 대통령이 지난 2년 반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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