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단'이 부른 탄핵, 그 불길한 징후들
권력정치의 관점에서 정치를 움직이는 힘은 권력을 향한 집념이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투쟁을 불러오고, 게임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여권의 양태는 전형적인 권력암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는 서로 일상의 여항(閭巷)에서도 보기 어려운 적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주문하는 것 자체가 남사스럽다. 사실상의 '적대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행위들을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 대표는 민의에 직진하지 않고 있다. 해병대원 제3자 추천 특검은 사라졌고, 생뚱맞게 특별감찰관 이슈를 꺼내들었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는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시스템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국민의힘은 20대 대선에서 이겼다. 그리고 곧 이어 실시된 지방선거 역시 승리했다.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이겼지만 불과 석 달 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 구청장을 싹쓸이할 정도로 대승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윤석열 정권은 역대 어느 정부의 지지율 보다 낮은 지지율이 고착화됐고 20%대 초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개월 후의 총선의 바로미터라고 의미가 부여된 지난 해 10월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대패한 국민의힘이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대표를 투입했다. 그러나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둘러싸고 용산과 충돌했고, 대통령실은 노골적으로 당시 한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당정이 각자 갈 길을 간다고 하지만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당에는 선출직이면서 친윤 핵심인 추경호 원내대표가 버티고 친윤의 철옹성은 견고하다. 한 대표는 당을 대표하지만 실질적으로 당내 세력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여당 투톱의 대립, 당정 수장의 대결 구도가 여권의 권력지형이다.
김 여사가 정국의 블랙홀이 되었고, 9월 중순 경부터 발화한 명태균 '사태'와 강혜경의 '폭로'는 정국을 저열한 진위공방의 늪으로 빠뜨려 정국은 수사와 정치가 혼재한 최악의 블랙 코미디로 전락했다. 급기야 어제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뚜렷이 보이는 통화 녹취가 생생한 목소리로 공개됐다. 이제 김 여사 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농단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은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건지, 외면하는건지 마이동풍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시탐탐 대통령 탄핵의 방아쇠를 당길 기회를 엿본다. 당장 탄핵을 공식화할 '헌법과 법률 위반'이 없을지 모르지만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휘발성 강한 뇌관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태로 임기를 마치기 어렵다고 보는 게 상식이 되는 건 아닌가.
행여 11월의 이재명 대표의 재판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유죄 시 국면이 바뀌어 '이슈 체인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정무적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민주당이 세 번째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은 대통령의 재의요구로 국회에서 재표결 시 통과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볼 때 대통령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탄핵도 처음에 법 위반 차원이 아니었다. 연설문을 최서원에게 미리 보여주고 비선에게 정치건, 정무건, 국정이건 조력을 구한 게 드러나면서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선출자에 대한 주권자의 분노와 징계가 구체화되어 나타난 게 현직 대통령의 파면이었다. 박근혜 탄핵의 시발점이 '국정농단'이었단 얘기다.
한국정치에서 '전향'은 분단의 구조적 비극에서 비롯됐지만, 이제 윤 대통령 부부는 진정한 전향(轉向)을 하지 않으면 역사의 데자뷔가 재연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향은 김 여사에 대한 특검 수용과 대통령의 육성에 대한 대통령 자신의 분명한 해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해병대원 특검에 대해서도 제3자 추천 등의 조항을 보완해서 특검을 수용할 때 정권이 혈로를 뚫을 수 있다. 두 특검이 결국 정권의 말로를 재촉한다고 보는 게 여권 핵심의 시각이라면 이는 교정해야 마땅하다.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
민심은 두 특검에 대해 압도적 찬성 의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고 타락했다고 해도 민심을 이길 수 있는 정권은 없다.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정권을 장악한 측에서 이 원칙을 알지 못하고 민심과 역행한다면 정권은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지난 달 중순 경부터 발화한 명태균 사태와 강혜경의 폭로는 정국을 저열한 진실공방과 수사가 뒤엉킨 '난장'의 도가니로 밀어넣었다. 여기에 법치와 정치가 뒤얽힌 소용돌이의 정국의 연속이다. 이제 대통령이 그의 육성에 대해서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김 여사가 진실을 밝여야 한다. 또 다시 '농단'이 정치를 양대 진영의 거대한 쟁투로 인도하는가. 바야흐로 또 한 차례 '소용돌이의 정치'가 서서히 에너지를 모아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ccr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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