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열차’ 시동 건 巨野…與가 믿는 3개의 ‘브레이크’
보수의 학습효과 “박근혜 시즌2는 안 돼”…‘뭐가 더 나올까’ 불안감도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거야(巨野)의 '탄핵열차'가 마침내 출발할까. 원내 12석 조국혁신당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초안' 작성을 시작한 가운데, 그간 대통령 탄핵에 대해선 '선(先)특검-후(後)탄핵' 전략으로 신중하던 더불어민주당의 태도에도 별안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직접 통화하는 녹취를 민주당이 입수해 공개하면서다. 민주당이 이를 공천 개입의 '스모킹건'(결정적 물증)이라고 규정하는 가운데 야권 차원의 대통령 탄핵소추 논의가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탄핵안 발의는 재적의원의 과반(150석)으로 170석을 보유한 민주당 단독으로도 가능하다.
야권이 탄핵열차를 출발시킬 경우 시선은 여당으로 향하게 된다. 탄핵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재적의원의 3분의 2(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거야 192석이 모두 찬성한다고 해도 탄핵안 통과를 위해선 여당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물론 개혁신당 등 야권 일부도 현재로선 탄핵에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최근 격화한 여당 내 분열이 탄핵 정국의 변수가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여권의 현재 내부 분위기는 탄핵에 가세할 임계점엔 도달하지 않았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물론 '현시점'에 한해서다. 추가적인 '치명타'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 탄핵의 '여당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온 국민을 절망과 허탈감에 빠뜨린 2016년의 악몽이 재현될까. 여의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국정농단 프레임' , 탄핵열차의 출발점
야권 군소 정당을 중심으로 대통령 탄핵 추진 계획은 이미 몇 달 전부터 공식화됐다. 혁신당은 이미 지난 7월 '탄핵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의제화하기 시작했고 최근 수위를 확 끌어올렸다. 혁신당은 10월26일 서울 서초동에서 '검찰해체·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언대회'라는 이름으로 첫 탄핵 관련 장외집회를 열었다. 그 직후인 10월28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진 조국 혁신당 대표는 "당내 법률가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작성하고 있다"며 "조만간 초안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혁신당 외에도 3석의 진보당 등 진보 계열의 군소 야당들은 대부분 윤 대통령 탄핵에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10월31일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녹취를 전격 공개하면서 정치권에는 충격파가 강하게 일었다. 민주당 설명에 따르면 해당 녹취는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2022년 5월9일 녹음된 것으로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윤 대통령은 명씨에게 "(국민의힘)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했고, 명씨는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다. 고맙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약 한 달 뒤 6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김영선 전 의원 공천에 윤 대통령의 개입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민주당은 녹취를 공개하며 관련 논란을 '국정농단'으로 규정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선 경선부터 대선 본선에 이르기까지, 취임 전부터 취임 후까지 사적 채널이 강력하게 작동한 '뒷거래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제1야당은 탄핵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박 원내대표는 탄핵 추진 여부와 관련해 "국민이 판단하실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재명 대표도 "있을 수 없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즉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국정농단 프레임을 직접 제기한 만큼 민주당이 조만간 탄핵열차에 시동을 걸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재명 선고 이후엔 野 탄핵 공세 힘 잃을 것"
반면 여권은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예상치 못한 녹취록 공개에 용산(대통령실)과 여의도(국민의힘) 모두가 술렁거리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여권의 주축 핵심 관계자들은 순간 동요가 있는 듯했지만, 전반적으로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며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오히려 결속을 다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친한(親한동훈)계 관계자는 민주당의 윤 대통령 녹취 공개와 야권의 탄핵 관련 움직임에 "녹취를 들었지만, 당선인 시절이라 공천 개입 등이 성립될지조차 의문이고 제3자인 명씨와의 대화 내용만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당 내부에 탄핵에 찬성하는 인사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 여권에선 이번 녹취가 공천 개입은 물론 탄핵의 '스모킹건'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당시 윤석열 당선인은 당 공관위로부터 공천 관련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적 없고, 명씨가 김영선 관련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는 대통령실 해명대로 실제 당시 당선인이 공천에 개입했는지,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공천에 실제 영향이 생겼는지 등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권은 애초부터 2016년 국정농단 사태와 같이 윤 대통령 탄핵을 촉발할 정도의 결정적 요인은 없다고 판단해 왔다. 따라서 탄핵을 멈출 수 있는 '여당의 브레이크'는 여전히 정상작동할 거란 게 여권 내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실 여권 인사들 대다수에게 8년 전 '박근혜 탄핵의 악몽'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점도 탄핵과 관련한 여당 결속의 주요 요인으로 풀이된다. 2016년 20대 국회에서 탄핵소추에 이어 2017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까지 이뤄지면서 보수는 분열했고, 수년간 패배의 쓴맛을 경험해야 했다. 20대 국회에서 여당 소속이었던 한 전직 국회의원은 "그때 당이 쉽게 분열하면서 보수가 더욱더 기나긴 암흑기를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그 학습효과가 있기에 웬만해선 여당에서 이탈이 발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또한 여권엔 '믿는 구석'도 있다. 바로 야권 지도자들의 '사법 리스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월에만 두 건의 형사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조국 대표는 2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관련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여권은 야권 지도자들에 대한 선고 이후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 쏠렸던 관심이 전환되는 것은 물론 야권의 탄핵 공세도 여론의 힘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일종의 '방파제' 효과다.
"보수 분열해서 박근혜 탄핵…윤-한 갈등 해소해야"
물론 여권 내부에는 묘한 긴장감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뭐가 더 튀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특히 여권 지지율에 최대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추가적인 이슈들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정말 국정농단급의 논란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당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의 주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 내외와 명태균씨 관련 녹취, 메신저 대화 내용 등과 같은 자료 역시 더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여권이 제일 우려하는 지점은 여론의 향방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절반도 채 되기 전에 이미 지지율 20% 초반대에 갇히며 국정의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떨어지면 10%대가 된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분수령이 된 시점 중 하나가 2016년 말 20%대 지지율의 붕괴였다.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다는 건 핵심 지지층까지 돌아섰다는 의미다. 이번 민주당의 녹취가 탄핵의 요건이 될지 여부와 별개로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여권이 반짝 긴장하는 이유다.
아울러 여권에서는 이번 녹취록 공개로 여권 내부의 불안감이 조성돼 내부의 폭로가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권력이 강하면 기강은 유지되고 내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지만, 이미 각종 논란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레임덕이 초래한 권력의 흔들림이 내부의 동요를 낳고, 그 내부의 동요가 점점 파장이 커져 데드덕으로 향하는 권력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이슈인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분열, 당내 친윤(親윤석열)계와 친한계의 갈등도 탄핵을 앞두고 여권을 긴장시키는 최대 뇌관 중 하나다. 정치권에선 10월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진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회담을 끝으로 양쪽이 끝끝내 결별 상태에 이르렀다고 본다. 한 대표는 김 여사 관련 리스크를 해소하고 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윤 대통령은 거부하고 있다. 향후 김건희 특검 등 야권이 공세 수위를 더 높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양측의 대치가 더 격화할 수 있다. 여권의 분열이 곧 김건희 특검법 표결에서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권 내 일각에선 탄핵 위기가 현실화한 만큼 여권이 더 결집할 때라고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5선 중진의 윤상현 의원은 최근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2016년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와 똑같다. 데자뷔, 기시감이 든다"며 "대통령과 대표 간의 갈등이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보수 대통합을 위해 두 분이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11월2일 거리로 나서며 정권에 대한 공세 강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서울역 앞에서 김건희 여사 규탄 범국민대회를 개최한다. 혁신당의 장외투쟁과 함께 야권은 2016~17년 1600만 명(누적)이 참여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처럼 거리에서 여론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0월31일 "무너진 희망을 다시 세울 힘도, 새로운 길을 열어젖힐 힘도 '행동하는 주권자'에게 있다고 믿는다"며 집회 참여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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