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달린 '랩터', 진주에서 날아올랐다

조태성 2024. 11. 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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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의 이슈메이커]
1㎝ 발자국 화석으로 조류 비행의 기원 밝힌
'공룡 발자국 연구자'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내 연구는 발자국 화석의 보고인 진주 덕분
진주 일대 수많은 발자국 화석 꼭 보존돼야"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지난달 28일 경남 진주 신안동 진주교대 연구실에서 김경수 교수가 랩터 공룡 모형을 들어 보이면서 발자국 화석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진주=박시몬 기자

'무의식'이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탐험한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 그는 아동심리 발달 단계를 '구순기-항문기-남근기-잠재기-성기기'로 구분했다. 지금에야 19세기 군국주의 마초 독일 사회의 반영일 뿐이란 조롱도 받지만, 확실히 보강해야 할 부분은 하나 있다. 남근기와 잠재기 그 어디쯤 '공룡기'를 넣어야 한다.

공룡기는 말 그대로 공룡에 집착하고 쾌감을 얻는 시기다. 공룡기 아이들은 복잡한 라틴어 학명과 그 이름이 붙은 이유, 용각류니 수각류니 하는 어려운 분류법, 어른 눈엔 고만고만하지만 제각기 다르다고 주장되는 생김새 같은 걸 줄줄 외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상상의 나래를 펴는 데 공룡만 한 게 또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 공룡을 한국에서 쉬이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그런데 경남 진주에서 한 소식이 들려왔다. 공룡이 조류로 진화하는 과정을 발자국 화석으로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는 얘기. 한국 땅에서 세계적인 공룡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논문 공동 저자인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이자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을 연구실에서 만났다.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달린 랩터

그는 진주에서 발견된, 1억600만 년 전 백악기에 살았던 마이크로(초소형) 랩터가 남긴 1㎝ 크기의 발자국 화석을 토대로 날개를 퍼드덕 거리며 달리는 플랩 러닝(Flap Running)을 입증한 국제공동연구논문을 냈다. 이 논문 'Theropod trackways as indirect evidence of pre-avian aerial behavior'(수각류 발자국은 조류 이전의 공중 행동에 대한 간접 증거)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진주에 살았던 참새만 한 크기의 마이크로 랩터의 복원도. 이 랩터가 남긴 1㎝ 크기의 발자국을 통해 플랩 러닝(Flap Running)을 입증했다. 김경수 제공

-발자국 흔적만으로 그런 추론이 나오나.

"2018년 발견된 참새 크기만 한 랩터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있다. 1㎝ 크기의 작은 발자국이 오른발 왼발 걸어간 순서대로 찍혀 있는데 다른 흔적은 3~4㎝ 정도 보폭이 나오고, 일부 자료는 55㎝까지 나왔다. 고작 1㎝ 정도 크기의 발을 가진 작은 공룡이 어떻게 그렇게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뛰어다닐 수 있을까, 그게 포인트였다."

-엄청난 스피드여야 가능한데.

"그 보폭을 속도로 환산해보니 1초에 10.5m 정도, 그러니까 100m를 9초 초중반대에 뛸 수 있는, 우사인 볼트(100m 최고 기록 9초 58)보다 빠른 기록이었다. 인간은 그냥 달리면 되지만 참새만 한 공룡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결론은 달리기만으론 안 되고 날개를 퍼덕이는 힘까지 쓰는 플랩 러닝을 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1㎝짜리 발자국 화석이 품은 진화의 비밀

-다리 굵은 '랩터계의 윤성빈'이 껑충껑충 뛰진 않았을까.

"그것도 계산하는 공식이 있다. 뒷다리 힘으로만 보폭을 그렇게 크게 내려면 뒷다리의 부피가 커야 하고 그러려면 단면적이 넓어야 한다. 단면적이 넓어지면 체중은 세제곱으로 비례해서 늘어난다.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셈이다. 1㎝짜리 발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 날개를 퍼덕이며 달렸다고 봐야 한다는 거다."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에서 벨로시 랩터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1㎝ 크기 발을 가진 참새만 한 마이크로 랩터가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벨로시 랩터는 여러 랩터 중에서 큰 축에 속한다. 공룡 연구 초창기엔 공룡을 거대한 도마뱀이라 생각했지만 요즘은 닭이나 타조 같았을 것이라고 본다. '쥬라기 공원'의 후속작으로 2015년 시작한 '쥬라기 월드' 시리즈는 이런 관점을 슬쩍 영화에 흘려넣었다. 1편 도입부에선 새를 공룡처럼 등장시키는 장면을 넣었고, 2022년 개봉한 3편에는 깃털로 뒤덮인 공룡 '피로랍토르'를 출연시켰다.

공룡이라면 매끈한 피부의 도마뱀 같은 모습을 떠올리지만, 요즘은 공룡 또한 깃털로 뒤덮였을 것으로 보는 관점이 우세하다. 사진은 최근 연구 결과를 반영해 전문가들이 그린 공룡들. 오늘날 새나 타조와 비슷한 모습이다. AFP 연합뉴스

-비행의 진화에 대한 연구는 그간 어떻게 이뤄졌나.

"처음엔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활강 행동에서 날개의 진화가 이뤄졌을 거라는 글라이딩(Gliding) 이론이 우세했는데 요즘은 날개를 퍼덕이며 달리다가 이륙했을 거라는 테이크 오프(Take Off) 이론이 더 우세하다. 2011년 영국에서 급경사를 올라가는 새들의 행동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날 줄 아니까 급경사가 있으면 그냥 날아 올라가면 되는데 다들 걸어가는 게 먼저였고 나중에 마지못할 때에나 날았다."

-도심의 비둘기만 봐도 그렇다. 되도록 안 난다. 오죽하면 '닭둘기'다.

"맞다. 그래서 왜 그럴까, 근육에 전극을 꽂아 측정을 해보니 날아가는 행동에 비해 걷는 행동은 에너지를 10%도 채 안 쓰더라는 것이었다. 걷는 행동이 먼저이고 날아가는 건 그 뒤 첨가된 행동인 셈이다. 그러니 활강보다는 이륙 아니겠느냐고 보는 거다. 이번 발자국 화석의 경우 이것만 가지고 이륙인지 활강인지 단정 짓긴 어렵다고 하더라도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는 그런 속도가 나올 수 없다는 핵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조류 비행의 기원이 진주의 발자국 화석에서 나왔다는 건 그런 의미다. 그간 걷는 행동과 날아가는 행동 사이에 플랩 러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왔고, 이를 토대로 가상 시뮬레이션 작업이 진행됐지만 화석 자료로 입증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룡 생태 엿볼 수 있는 생흔 화석의 보고, 진주

실제 그간 해외의 비행 연구는 날개 뼈를 바탕으로 날개 면적과 대칭성,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양력과 몸무게 등을 추정해 비교 분석하는, 한마디로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으로 진행했다 한다. 그런데 50㎝ 정도 간격으로 찍힌 1㎝짜리 발자국이 그 모든 걸 대신해버렸다.

-진주에 발자국 화석이 많다고 들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단 양적으로 압도한다. 다른 곳은 많아 봐야 수십 개, 수백 개 수준이라면 진주의 경우 진성면 가진리만 해도 새 발자국만 일단 2,000개 넘게 나온다. 호탄동에선 익룡 발자국만 2,000개 이상이다. 정촌의 육식공룡 발자국은 1만 개가 넘는다. 또 양을 넘어서 연구자에게 중요한 건 질과 다양성이다. 다른 곳에선 특정 공룡이나 새 발자국 정도에 그친다면 진주엔 악어, 포유류, 익룡, 육식공룡 발자국에다 개구리 발자국까지 나온다."

진주 뿌리산업단지 조성 지역에서 발굴된 발자국 화석. 바닥에 표시된 수천 개의 흔적이 모두 발자국 화석이다. 발자국을 일일이 확인하고 종류나 보행 특성 등을 추적하면서 연구를 진행한다. 김경수 제공

-백악기의 개구리 발자국 화석인가.

"맞다. 백악기 개구리 흔적은 전 세계에 4곳이 있는데 그중 2곳이 진주다. 질이 좋다는 건 그냥 발자국이 잘 남아 있다는 정도를 넘어서 '행동진화적 흔적', 그러니까 뒷다리로 땅을 박차며 폴짝 뛰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백악기 때 폴짝폴짝 뛰어다닌 개구리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백악기의 저어새가 먹이를 찾기 위해 부리로 수면을 좌우로 휘휘 저으면서 걸어나간 흔적, 캥거루 같은 포유류가 발톱으로 지면을 할퀴면서 두 발로 폴짝폴짝 뛰어다닌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화석들은 '생흔(生痕) 화석'이라고 부른다. 생명체가 살아 움직인 흔적이 기록된 화석이다. 화석이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뼈 화석은 '체(體)화석'이라고 한다. 처음엔 체화석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는 당대의 생태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생흔 화석도 중요한 자료로 간주된다.

0.1㎜ 차이 발바닥 지문까지 남아 있다

-진주엔 왜 공룡 발자국이 많은가.

"공룡 뼈 화석은 주로 예전 강에서 나온다. 사체를 퇴적물이 빨리 덮어줘야 하니까. 몽골이나 중국에선 뼈 화석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전남 보성에서 나온 '코리아노 사우루스 보성엔시스' 같은 것들이 있다. 반면 발자국은 호숫가에서 나온다. 부드러운 곳에 찍혀서 보존되니까. 아마 진주 일대, 한반도 남부 지역이 백악기 시절엔, 그러니까 1억1,000만 년 전부터 8,000만 년 전까지 약 3,000만 년 기간 동안 호수가 아니었을까, 그것도 다양한 먹을거리를 풍부하게 공급해서 여러 생물들을 불러들였던 일종의 천국과도 같은 호수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이렇게 많고 다양한 발자국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추정하고 있다."

-1㎝짜리 랩터 발자국도 그래서 남을 수 있었나.

"그렇다. 1㎝ 랩터 발자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룡 발자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그 정도 미세한 크기도 남았을 정도니까 발바닥의 무늬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미세한 발바닥 무늬는 두께로 따지면 0.1㎜나 0.2㎜ 차이다. 그 미세한 차이가 고스란히 다 남아 있는 거다."

경남 사천에서 발굴된 두 발로 걷는 악어 발자국. 쭉 걸어간 발자국 흔적이 또렷한데 발자국이 2개밖에 없어 익룡이네 아니네 여러 가설이 있었으나 발 모양, 발 뒤꿈치에 남은 피부의 패턴 등을 바탕으로 악어로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김경수 제공

2020년 김 교수는 두 발로 걷는 악어 화석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냈다. 논문 검증과 게재 과정에서 발자국 화석만으로 그걸 어떻게 악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그 반론을 잠재운 건 발자국 화석의 뒤꿈치 부분에 남아 있는 섬세한 발바닥 무늬 덕이었다. 그 무늬는 다른 것과 맞지 않았고 악어의 것과 똑같았다. 범행 현장으로 치자면 지문이 일치한 셈이다.

이렇게 자료가 많다는데 한국엔 공룡 연구자가 얼마나 될까. 어느 대학 누구, 어느 대학 누구 한 명 한 명 더듬어가던 김 교수의 손가락은 열 개를 다 채우지 못했다. 그마저도 대개는 고생물 전공이고 공룡 뼈나 발자국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이들은 더 드물다. 이유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김 교수도 "아무리 말려도 공룡 연구가 너무 재미있다고,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밀고 들어온 학생 두 명을 대학원생으로 받아주긴 했는데 '너희들 인생은 나도 모른다'고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진주의 경쟁력 '공룡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그래서 김 교수는 자기 논문과 연구 성과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장 보존이라고 강조했다. 그를 두고 남들은 좋은 논문 많이 발표했다고 부러워한다. 실제 2008년 진주교대에 자리 잡은 뒤 한반도에 랩터가 살았다고 처음 입증한 논문에서 시작해 이번에 플랩 러닝까지 많은 논문을 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어떻게 보면 진주라는 좋은 현장을 바로 옆에 끼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후배들의 연구를 위해서라도 현장은 보존돼야 한다.

-보존 문제에 들어가면 치열한 반대가, 특히 개발 이익이 크다는 곳에선 강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화석 자료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생물 자료들은 보존하려면 그 현장에다 완충지대까지 감안해 보존구역을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화석 자료는 비 안 맞게 그 위에다 뚜껑만 씌우면 된다. 상대적으로 쉬운 편인데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 좀 답답하다."

대표적인 게 진주 시내에 있는 경남과학교육원이다. 교육원을 새로 짓다 하필 그 땅에서 발자국 화석이 줄줄이 나온 것. 어떻게 할까 하다 그 현장 위에다 뚜껑을 덮듯 건물을 올린 뒤 아예 '화석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이런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거기다 생흔 화석은 공룡의 생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을 잘 입혀 가공하면 문화콘텐츠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다. 진주만의 경쟁력인 셈인데 길게 봐서는 그게 더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가 3D프린팅으로 뽑아낸 스테고사우루스의 앞발과 뒷발 뼈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진주=박시몬 기자

김 교수의 최근 관심사는 스테고사우루스다. 원래 스테고사우루스는 쥐라기에 살다 백악기 때 멸종됐다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백악기 초기 때 화석이 발굴됐다. 생명이 한 차례 연장된 셈인데 진주에선 백악기 후기 때 스테고사우루스의 발자국이 나왔다. 스테고사우루스의 생존 기한이 더 늘어난 셈이다. 거기다 이 녀석의 발걸음은 기존 스테고사우루스와는 좀 다르다. "뭔가 다른 종류의 스테고사우루스가 한반도에 살았다는 점을 입증해 보이는 게 목표"다.

그러고 보니 연구실엔 그 '밀고 들어온' 대학원생들이 만든, 3D프린터로 뽑아둔 스테고사우루스의 앞발 뼈와 뒷발 뼈 축소 모형이 있다. 이 연구 또한 뼈 모양과 아주 잘 들어맞을 정도로 상태가 좋은 발자국 화석 덕분에 시작됐다. 진주이기에 가능한 연구인 셈이다.

진주=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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