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교과서에 있던 '브레트의 법칙'에 금 갔다...신약 개발 쉬워질까

이병구 기자 2024. 11. 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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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 배열을 특정한 모양으로 제한하는 화학 규칙이 있다.

닐 가그 미국 로스엔젤레스캘리포니아대(UCLA) 화학·생화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은 기존에 활용하기 어려웠던 불안정한 물질 '항브레트 올레핀(ABO)'을 새로운 화합물 합성에 활용할 방법을 찾아내고 연구결과를 3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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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규칙인 '브레트의 법칙'에 위반하는 물질로 새로운 물질 구조를 구현해 신약 개발 등에 응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유기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 배열을 특정한 모양으로 제한하는 화학 규칙이 있다. '브레트의 법칙(Bredt's rule)'으로 불리는 이 규칙은 지난 100년간 교과서 한켠을 자리잡을 정도로 공고했다. 과학자들이 브레트의 법칙을 우회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연구결과를 활용하면 지금까지 구현이 불가능했던 새로운 물질구조를 합성해 신약 등에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불안정한 '법칙 위배' 물질 활용할 길 열어

닐 가그 미국 로스엔젤레스캘리포니아대(UCLA) 화학·생화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은 기존에 활용하기 어려웠던 불안정한 물질 '항브레트 올레핀(ABO)'을 새로운 화합물 합성에 활용할 방법을 찾아내고 연구결과를 3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탄소(C)와 수소(H)로 이뤄진 유기 분자인 올레핀은 탄소 원자 사이의 이중결합이 특징이다. 올레핀은 탄소 수에 따라 에틸렌, 프로필렌 등으로 나뉘며 폴리에틸렌(PE), 폴리염화비닐(PVC),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과 다양한 유용 물질의 원료로 쓰인다.

브레트의 법칙은 독일 화학자 율리우스 브레트가 1902년 처음 제시해 1924년 완성된 이론이다. 올레핀에 있는 이중결합 탄소들에 연결된 다른 요소들이 모두 같은 평면에 존재한다는 내용으로 화학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정설로 굳어졌다. 예를 들어 이중결합을 한 두 탄소에 각각 수소가 2개씩 결합됐다면 전체 구조는 탄소 2개, 수소 4개가 모두 한 평면에 있을 때 가장 안정하다는 법칙이다. 정원진 광주과학기술원(GIST) 화학과 유기합성연구실 교수는 "만일 각도가 뒤틀리면 탄소 원자 사이의 이중결합 중 하나가 끊어지며 불안정해진다"고 설명했다.

브레트는 실험을 통해 올레핀에서 각도가 뒤틀린 화합물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 교수는 "브레트의 법칙을 위반하는 화합물들을 ABO라고 부르며 대부분 가상에서 또는 순간적으로만 존재한다"며 "브레트의 법칙은 올레핀 화합물 합성을 구상할 때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실릴 할로겐화물(silyl halides)'이라는 물질을 활용해 화학 반응 도중 순간적으로 ABO로 바뀌는 화합물을 고안했다. 불안정한 ABO가 생성되자마자 다른 물질과 반응해 안정적인 물질로 변환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 교수는 "ABO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든 대단한 연구"라고 말했다.

● 신약 개발 등 응용 가능

연구결과가 브레트의 법칙 자체를 뒤집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ABO를분리하거나 관찰한 것도 아니고 이런 구조가 불안정해 얻기 어려운 것은 여전히 사실"이라며 "브레트의 법칙을 파훼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브레트의 법칙을 포함해 화학에서 이야기하는 '법칙'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화학의 또 다른 법칙인  '발드윈 법칙(Baldwin’s rule)' 같은 경우도 명확한 이론이 아니라 실험적인 가이드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측 성능이 매우 뛰어나서 거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진다.

간혹 법칙을 위배하는 결과들이 신기한 것처럼 보고되곤 하는데 근본적인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편의상 간단한 법칙으로 만들어 적용하기 때문에 예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ABO를 만들어 다룰 수 있다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구조를 합성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정 교수는 "ABO로부터 자연스럽게 다중 고리 화합물이 생성되는데 이런 구조가 약리활성 물질에 많기 때문에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신약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브레트의 법칙 때문에 과학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합성 분자의 종류가 제한돼 신약 발견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았다"며 "그동안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ABO를 연구하지 않았는데 규칙이 있으면 창의성이 파괴된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 doi.org/10.1126/science.adq3519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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