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방어용 무기는 ‘살상’하지 않나요?
지난 22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끝난 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러시아 파병 및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며 “북·러 군사협력 진전 추이에 따라 ‘단계적 대응 조치’를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살상용 무기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살상용 무기란 표현이 “감정이 개입된 단어”라고 주장하며 “방어용 무기나 공격용 무기로 구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방어용 무기 지원을 고려할 수도 있고 또 한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마지막으로 공격용 무기까지도 할 수 있다”고 단계적 대응 조치를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4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살상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틀 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말을 윤 대통령이 직접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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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주장처럼, 무기를 방어용 무기와 공격용 무기로 나눌 수 있을까. 나눌 수 있다면 어떤 기준이 있을까. 무기체계를 다룬 국내 법령에는 방어용 무기, 공격용 무기란 구분이 없다. 국방에서 사용하는 군수품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로 나뉜다. 무기체계는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상 ①지휘통제·통신무기체계 ②감시·정찰무기체계 ③기동무기체계 ④함정무기체계 ⑤항공무기체계 ⑥화력무기체계 ⑦방호무기체계 ⑧사이버무기체계 ⑨우주무기체계 ⑩그 밖의 무기체계가 있다. 이 가운데 방공(대공포·대공미사일 등), 화생방, 전자기펄스(EMP) 방호로 이뤄진 방호무기체계가 방어용 무기에 가깝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군사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통상 공격용 무기, 방어용 무기는 이동과 기동을 중심으로 나눌 수 있다. 많이 움직이는 무기는 공격용, 거의 움직이지 않는 무기는 방어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땅에 묻어두면 그 자리에 있는 지뢰, 진지에 고정 배치된 대공미사일 같은 방공무기 등이 방어용 무기이고, 탱크, 전투기처럼 전쟁터를 종횡무진 누비며 전투를 벌이면 공격용 무기가 된다.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서는 전차, 장갑차, 야포, 전투기, 공격용 헬기를 대표적 공격형 무기로 꼽았다. 지난해 11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가 탈퇴와 효력중단을 선언한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은 동서 냉전 막바지인 1990년 11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양쪽이 재래식 무기의 상한선을 설정한 군축 조약이다. 특히 공격용 5대 무기(전차, 장갑차, 야포, 전투기, 공격용 헬기)를 감축해 냉전 이후 유럽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어용 무기와 공격형 무기가 무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무기를 사용하는 지리적 조건, 무기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공격용 무기가 방어용 무기가 되기도 하고, 방어용 무기가 공격형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그때그때 달라요’다. 상대방 전투기의 공습을 막는 대공 미사일이 한쪽에겐 방어용 무기지만 다른 쪽 전투기 조종사는 자신을 해치는 공격용 무기로 여길 것이다.
공격과 방어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모호한 개념이다. 해마다 하는 한미연합연습을 두고 한국과 미국은 “방어 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북침 연습”이라고 반발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두고도 의견이 크게 갈렸다. 미사일방어(MD)를 옹호하는 쪽은 사드가 방어용 무기라고 하지만, 강력한 창을 가진 쪽이 엠디를 통해 강력한 방패까지 갖춘다면 상대의 반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제공격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엠디가 한쪽에게 방어용 무기일 수 있으나 상대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선제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일으키는 공격용 무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 지원 검토’ 보도가 쏟아지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30일 “무기 지원 논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며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1차적으로 방어용 무기 지원이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방어용 무기 지원에서 시작해, 상황 봐서 공격용 무기 지원도 검토하겠다는 ‘단계적 대응 조치’를 재강조한 것이다. 국방부도 지난 31일 “우크라이나가 우리 정부에 포탄 지원을 요청한 적이 없고, 포탄 지원을 논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살상용 무기’가 주는 살벌한 어감을 피하려고 애써 방어용 무기, 공격용 무기로 구분하고 있지만, 공격이든 방어든 무기는 사람을 죽고 아프게 하는 ‘살상’이 기본값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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