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모른 채 배우다보면,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북리뷰]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유유
韓독자 25개 질문에 해답 서술
“고행 통해 얻어지는 지식만이
내 것이란 편협에서 벗어나야”
모든 이들을 스승으로 삼고
학습목적 없이 배워도 좋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끄는 일본이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채 당장의 이익만을 좇는 ‘조삼모사’ 속 원숭이를 닮아가고 있다며 쓴소리를 했던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대 교수.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석학인 그가 한국 독자들을 위한 책을 펴냈다. 연구서와 번역서를 비롯해 100권이 넘는 책을 썼으며 그중 40권 넘게 한국어로 번역됐지만 한국어판을 먼저 내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우치다 교수는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이 한국 독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질문을 받아 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에 ‘세계 유일 우치다 다쓰루 연구자’를 자처하며 그의 책을 집요하게 번역해 온 역자 박동섭이 직접 한국 독자들의 물음을 우치다에게 던졌다. 책 속에 알차게 담긴 25가지 질문은 모두 ‘공부’에 관한 것이다. 1분 1초가 아깝다며 성장을 이뤄줄 지식을 찾아 방황을 멈출 수 없는 지금. 일흔을 넘어선 석학은 어떤 공부를 권할까?
책은 ‘배우는 태도’에서부터 시작한다. 대단한 업적을 이룬 연구자와 그들의 저서가 유일한 가르침을 주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원하면 언제든 클릭 몇 번으로 인류의 모든 지식을 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검색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배우는 사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라고 짚는다. 반드시 스스로 고행을 거듭해 얻어지는 지식만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은 가르침이 더 큰 가르침으로 이어지기에 배우는 과정을 안내하는 모든 이들을 스승으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덧붙인다.
이미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을 세계에서 가장 정확히 계승한 연구자임에도 우치다 교수는 스스로를 ‘제자’라고 소개하며 몸을 낮춘다. 그 이유가 겸손만은 아니다. 연구자라면 정확히 이해한 한도 내에서 말하고 쓸 수 있을 뿐이지만 제자는 거인의 뒷모습을 어렴풋이 따라가는 사람이므로 미처 완벽하지 못한 이야기도 용감하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까지나 배우려는 태도를 간직한 제자일 때, 배움은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치다 교수는 ‘무방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방비란 곧 책 제목인 ‘무지’와 연결되는 것으로 정확한 학습 목적을 가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평생의 학습 경험을 돌아보며 무엇도 알 수 없는 채 읽는 ‘난독’에서 무엇을 모르는지 인지한 채로 읽는 ‘체계적 독서’로 발전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후 책을 읽을 때마다 복병 같은 무지를 마주하는 ‘무방비 독서’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마음껏 무지와 뒹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배움이 쌓이는 셈이다.
저자가 평생 동안 천착했던 레비나스는 진정한 사유의 방식으로 ‘전언 철회’를 제시했다. 어떤 규정을 제시하자마자 부정해버리는 방식이다. ‘포착 가능하면서도 모든 포착을 벗어나는 것’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인 예다. 우치다 교수는 전언 철회의 방식을 배움에도 적용한다. 그는 과학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사회적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하며 검증에 필요한 것은 토론이고 그렇다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제든 부정할 수 있는 주장을 하는 것, 오류를 받아들인 채로 말하고 쓰는 것을 계속하며 지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자신의 소망도 꺼내 보인다. 어느덧 탄생보다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진 노교수는 ‘무방비’ ‘모종의 순수함’을 전도하고 싶다고 말한다. 비판받을까 두려워하며 완벽한 이야기만 내놓고자 하는 사람은 연속적 자기 쇄신을 할 수 없고, 완전하지 않음에도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만 모인 탓에 민주주의가 병들어 간다고 진단한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이와 정반대의 무방비로 배워나가는 청년들이 있기를, 그들이 어른이 돼 가기를 바란다는 노교수의 간곡한 부탁이 책장을 넘어 쟁쟁하게 전해진다. 266쪽, 1만8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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