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마음을 환히 밝히는 건 ‘나직한 기척’이면 충분[어린이 책]

2024. 11. 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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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낮 두 시 언덕 아래 작은 집.

지난 토요일에는 박서영 작가의 첫 창작 그림책 '몹시 큰 초대장'을 꺼냈다.

자기 손에 잘 맞아서 그런지 우리 집에 오는 아이들은 조그만 책들에 더 호감을 보인다.

토요일 밤 여덟 시 언덕 위 까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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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몹시 큰 초대장
박서영 글·그림│모든요일그림책

토요일 낮 두 시 언덕 아래 작은 집. 동네 아이들 몇몇이 문을 두드린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 나의 어린 학생들이다. 외투를 의자에 걸치고 각자 오늘의 컵을 고른다. 유자청을 한 스푼 가득 담아 물을 붓는다. 백설기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누가 나에게 묻는다. 쌤, 오늘의 그림책은 뭐예요?

지난 토요일에는 박서영 작가의 첫 창작 그림책 ‘몹시 큰 초대장’을 꺼냈다. 제목과는 달리 높이가 한 뼘 정도 되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책이다. 자기 손에 잘 맞아서 그런지 우리 집에 오는 아이들은 조그만 책들에 더 호감을 보인다. 이 책은 첫인상부터 귀엽다며 야단이 났다.

토요일 밤 여덟 시 언덕 위 까만 집. 마을 전봇대 구석에 작은 초대장이 붙어 있다. 누군가 발견하기를 바라며 한 소년이 가져다 붙인 것이다. 하지만 초대장은 눈에 겨우 보일 만큼 아주 작다. 금세 사람들 발길에 차인다. 이왕이면 커다랗고 화려하게 초대장을 꾸미지는 하고 페이지를 무심히 넘기는데 학생들이 두런댄다. 쟤 좀 소심하네. 아무도 안 올까 봐 겁먹었나 봐.

만화처럼 작게 분할된 컷들에 소년의 얼굴이 비친다. 혼자만의 파티를 여는 소년의 표정은 어둡다. 케이크에 초를 끄면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는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일 거라는 깊은 외로움을 느낀 순간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오며 분위기는 반전된다. 과일 장수와 미화원, 피에로들, 강아지와 소녀까지 이들은 어떻게 오게 됐을까? 소년에게 건넨 몹시 큰 선물은 무엇일까?

짧은 이야기이지만 누구든 자기 마음을 포개어 볼 책이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외톨이가 되길 자처한 적이 있다면 말이다. 소년과 손님들은 함께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활짝 웃는다. 깜깜한 마음을 환히 밝히는 건 서로의 나직한 기척이면 충분하다. 그림책을 덮으니 누가 내게 말했다. “쌤, 또 읽어 주세요!” 56쪽, 1만3000원.

남지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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