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조 '유증 폭탄' 고려아연…밸류업 명단서 빠질까
투자자들 "이게 맞나, 밸류업 취지 무색"
밸류업 지수서 빠지나…거래소는 신중
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의 '기습 유상증자 발표'를 내놓은 데 대해 증권업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부정거래 소지가 있다"면서 엄정 단속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연말 있을 한국거래소의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구성종목 변경·비중 조정) 작업에서 고려아연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에선 고려아연의 지수 편입 상태가 유지되면 만성적인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자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의 취지와 모순된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반면 주주가치 훼손 측면에서는 실망스럽지만, 세계 1위 종합 비철금속 제련기업인 만큼 투자 종목으로서는 매력이 유효하다는 의견도 있다.
1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공개된 밸류업 지수의 구성종목 100종에는 고려아연이 포함돼 있다. 특히 전날 기준 지수 내 고려아연의 비중은 2.68%에 해당된다. 밸류업 지수에 들어간 기업 100곳 중 8번째로 비중이 크다. 지난달 29일 찍은 고점(154만3000원) 대비 주가가 35% 빠진 점을 감안해도 이 수준이다. 고려아연은 주요 철강·금속주로 이뤄진 '코스피 철강금속지수' 소속 종목 중 포스코홀딩스·현대제철 등을 제치고 유일하게 밸류업 지수에 포함됐다.
밸류업 지수를 기초지수로 삼는 패시브 상장지수펀드(ETF)들은 지수 구성종목 비중을 그대로 따라간다. 따라서 지수 내 비중이 높은 종목일수록 자금 유입 효과도 크다.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밸류업 지수에 주요 비중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초 정부와 금융당국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난달 30일 고려아연은 발행주식 20%에 이르는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 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조달 금액은 2조5000억원으로, 이 중 2조3000억원이 차입금 상환 목적에 쓰인다. 곧바로 시장에선 최윤범 회장이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지분율 우위를 점하려고 '주주들의 돈으로 빚 갚는 방식'을 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초 주주환원을 명분으로 앞세워 공개매수를 진행한 것과 충돌되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전날 논평에서 고려아연의 이번 일반공모 유상증자 결의에 대해 '시장 교란 행위'라면서 "회사의 주인이 전체 주주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고려아연은 지금과 정반대로 고가에 유상증자하고 저가에 자사주를 매입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감독당국도 칼을 빼들었다. 금융감독원은 전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고려아연의 기습 유상증자 발표에 부정거래 소지가 있다면서 불법행위가 확인될 경우 수사기관에 적극 이첩하겠다고 밝혔다. 함용일 부원장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차입을 통해 자사주 취득해서 소각하겠다는 계획, 그 후에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을 모두 알고 해당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기존 공개매수 신고서에는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고,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고려아연이 밸류업 지수에 계속 포함될 수 있는지를 두고서는 잡음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밸류업 지수는 한국 증시에서의 '기업가치 중시' 선순환 구조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것인 만큼, 취지와 충돌하는 종목들은 정량적인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시장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지수에는 두산로보틱스와의 비합리적인 합병 시도로 주주 이익 침해 논란이 인 두산밥캣도 들어가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회장 경영권 보전을 위해 주주를 희생시킨 기업이 밸류업 지수에 들어가 있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운용사 한 펀드매니저도 "고려아연 같이 논란을 부른 기업들은 당국이 정성적으로 개입해 지수에서 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의 '기업 밸류업 자문단' 한 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실상 법을 지키면서도 교묘히 악용하는 경영진들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이를 막겠다는 밸류업 지수마저 지표상 기계적으로만 종목을 꾸린다고 한다"며 "두산밥캣과 고려아연처럼 소액주주들을 척지고도 지수에 들어가는 일이 없어지려면, 지배구조 관련해 심의위가 주관적으로 해석해 종목 편출입을 결정하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반면 일각에선 글로벌 대장주로서 투자가치를 우선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법꾸라지(법+미꾸라지)를 연상시키는 기업이 어디 고려아연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수 종목은 노벨상 뽑듯 위원들의 주관을 반영해 꼽는 게 아니다. 기업들의 내재가치가 아닌 절대 시가총액 기준으로 봤을 때 본업 글로벌 1위사인 고려아연을 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결과적으로 당국 등의 저지로 유상증자를 안 하게 된다면 밸류업 구성종목으로선 문제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시장 의견이 분분한 만큼 한국거래소의 선택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앞서 거래소는 밸류업 지수 구성종목 발표 후 시장에서 다양한 지적이 제기되자 "연말 구성종목을 변경하는 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기 리밸런싱 시기는 매년 6월이지만, 이번 12월 시장 여론을 감안한 '수시' 리밸런싱하겠다고 예고한 셈이다.
지수 방법론상으로는 금감원 조사 결과에 따라 리밸런싱 때 고려아연을 빼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경우 지수운영심의원회에서 정량적인 기준과 별도로 예외적 종목 편입·편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기준엔 맞더라도 기업가치 관련한 중대 결함이 있는 경우 지수에서 누락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당장 이 지수를 기초(비교)지수로 삼아 오는 4일 출시되는 ETF들은 현행 구성종목대로 나올 예정이다. 이미 4일 상장을 앞두고 운용사들이 지난 30일 증권사들로부터 주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거래소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논란이 인 기업을 포함한 데 대해 "지수는 '보편적 정량지표'를 '객관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지수 투명성을 위해 개별기업에 대한 거래소의 평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거래소 한 관계자는 "올 12월 리밸런싱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고 내부 검토 중인 상황"이라며 "특정 종목에 대한 잔류 여부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당국 한 관계자는 "밸류업이라는 명제에 모든 측면이 부합하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때문에 시총 기준으로 지수를 꾸리는 것인데, 부정거래가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 용인하고 어디까지를 문제 삼을지 기준이 모호한 만큼 현실적으로 고려아연 등을 지수에서 편출시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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