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피휘(避諱)’와 ‘해음(諧音)’ 현상
피휘(避諱)라는 말이 있다. ‘국왕, 조상, 성인이 쓰는 이름, 국호, 연호와 같은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즉 존중받아야 할 대상을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는 글자뿐만 아니라 음이 비슷한 글자를 모두 피하거나 획의 일부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흐지부지’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얼마 전에 올린 적이 있다. ‘휘지비지’가 변하여 ‘흐지부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피휘의 방법이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피휘의 용례가 일관성이 없는 것이 그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편찬자가 여러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해음 현상이란 말이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떤 단어가 또 다른 단어와 같은 소리가 나거나 혹은 비슷한 소리가 나면 해당하는 또 다른 단어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만드는 언어 유희나, 이로 인하여 금기나 미신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위키백과> 참조) 이러한 해음 현상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 일부 비속어나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가 섞여 있을 때 다른 발음으로 말하는 방식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쌉가능’이란 표현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쌉가능이란 말은 주로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속어인데, “매우 가능하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ssap’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여성의 성기에서 유래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함부로 쓰기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은 ‘개’라는 접두사의 의미가 바뀌었듯이(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개좋아’는 ‘매우 좋다’는 뜻임), ‘쌉’이라는 접두사가 생겨서 ‘매우’라는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주로 자신감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공식적이거나 점잖은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어는 아니다.
해음현상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도 병원에는 4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F층이라고 하고, 4층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죽을 사(死)자와 같은 발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등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럽에서 13(예수가 13일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사망했다)이라는 숫자를 꺼리는 것과 같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동음이의어(같은 발음에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에서 유래한다. 중국인들은 유난히 8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이것 또한 발복(發福)한다는 말에 있는 ‘발(發)’과 ‘팔(八)’의 음이 같은 것에서 유래한다. 중국인들은 숫자 6도 좋아한다. 육의 발음이 류(流 liu)와 같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때는 6이 들어간 날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해음 현상이 꼭 부정적인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술(주(酒)과 ‘오래살다(구(久)’의 음이 같은 것으로 인해 술을 선물하는 것도 해음의 일종이다.
한편 한국인들은 숫자 3을 유난히 좋아한다. 뭐든지 ‘삼 세 번’이라고 해서 세 번은 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삼(三)과 산(散 흩어질 산)의 발음이 같은 관계로 3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재물이 흩어지다, 이혼하다, 떨어지다’ 등의 의미(散)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해음 현상은 동일한 발음으로 인해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삿짐센터의 전화번호는 2424, 도로공사의 전화번호는 2504(둘오공사-도로공사), 기차역의 전화번호는 7788(칙칙폭폭), 배달업체의 전화번호는 8282 등을 사용하는 것이 모두 해음현상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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