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태어난 ‘또 다른 나’ … 자아 침범해 현실 무너뜨린다[북리뷰]
나오미 클라인 지음│류진오 옮김│글항아리
동명이인의 백신음모론 퍼지며
온라인서 무차별 비난받은 저자
‘디지털 도플갱어’ 현대상 탐구
진실·거짓 경계 흐려지며 심화
대립 집단 간 양극화 부르기도
거울에 비친 듯 나와 똑 닮은 존재를 마주친다면 우리가 처음 느끼게 되는 감정은 무엇일까. 공포에서 시작해 혼란과 이내 분노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도플갱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19세기의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를 비롯해 심리학자인 카를 융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조던 필과 같은 창작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도플갱어에 대해 다룬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흔히 창작물의 소재로 활용되는 ‘도플갱어’. 이 책의 저자인 나오미 클라인은 이를 실제로 경험했다. 그가 마주한 자신의 분신은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등의 페미니즘 저서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나오미 울프다.
허무맹랑한 동명이인 이야기일 것 같지만, 단순히 ‘나오미’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 두 인물은 지나치게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저자는 ‘노 로고’와 ‘쇼크 독트린’, 나오미 울프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와 ‘미국의 종말’과 같은 사회 비평서를 비슷한 시기에 펴냈다. 둘은 모두 유대인이고 조명 아래에서는 금빛이 되는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그의 파트너는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아브람 루이스이고 울프의 파트너는 영화 제작자 아브람 루트비히다. 울프와 클라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오미 혼동 사태’는 팬데믹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이전까지 여성의 신체, 섹슈얼리티, 리더십에 대해 말해오던 울프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신을 품고 극우적 음모론을 다양한 매체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온라인상에서는 클라인을 울프로 착각한 이들이 등장해 무분별한 비난과 폭언을 쏟아냈다. 그 강도는 극에 달해서 클라인이 자신의 SNS 자기소개란에 “그 나오미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달아야 했을 정도였다.
도플갱어를 마주한 뒤 클라인의 행동은 우리가 영화와 책에서 자신의 분신을 만난 인물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나오미’로 인해 삶은 피폐해졌고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분신을 쫓는다. 클라인은 울프의 모든 활동을 추적하기에 이르렀고 백신 무용론을 퍼트리는 그의 인터넷 방송부터 마침내 X(옛 트위터)에서 계정이 정지되고 퇴출당하는 과정까지를 지켜본 뒤에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진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클라인이 우연한 계기로 경험한 도플갱어에 대한 사유는 이 시점부터 여러 가지로 뻗어 나간다. 이름이 같거나 외형이 비슷하지 않더라도 ‘도플갱어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이미 벌어지는 일이다. 이미지가 복제되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사회는 “거울 세계”와 같다.
클라인에 따르면, 도플갱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와도 맞물리며 진실과 허위가 뒤섞이는 거울 세계의 핵심을 이룬다. 서로 대립하는 진영은 상대방의 행동과 발언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정체성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형성되는 경향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이념과 신념을 지닌 집단이 오히려 서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독특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조던 필 감독의 ‘어스’에서 자신과 동일한 모습의 도플갱어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나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이 분신을 통해 억압된 욕망을 해방시키고 폭력성을 강화시키는 모습은 이러한 현대상을 분신에 빗대어 표현하는 적절한 예시다.
도플갱어를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디지털 세계다. 클라인은 우리가 온라인에서 남기는 수많은 데이터 조각이 우리의 “디지털 도플갱어”를 형성하며, 이는 단순한 이상적인 아바타가 아닌 테크 기업들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자아라고 설명한다. 이 자아는 우리가 클릭하는 것, 위치 정보를 사용하는 것 등 모든 디지털 활동을 바탕으로 구성되며, 현실에서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 대해 피상적으로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형성된 존재는 우리의 실제 자아와 달리, 타인이 보는 방식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진짜 나 자신과 진실을 왜곡한 ‘또 다른 나오미’를 만들어낸다.
사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미 너무 많이 도플갱어와 만나고 있다. SNS 속에 만들어진 디지털 자아와 사회생활 속에서 다듬어지고 포장된 사회적 자아는 우리가 공포나 혼란, 분노를 느끼지 않고 매일 마주하는 나의 분신이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보다 완벽한 ‘디지털 도플갱어’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도플갱어가 나오는 수십 권의 책에서 해당 인물은 하나같이 분신의 출현으로 피폐한 삶을 산다. 필립 로스가 도플갱어를 다룬 소설 ‘샤일록 작전’에서 말했듯이 이 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가소롭고, 가소롭다기엔 너무 심각하다”. 612쪽, 2만8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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