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땐 강박·지금은 공황”… 마음의 병, 원인은 같고 증상만 변하는 걸까[정신과 의사의 서재]

2024. 11.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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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처음 오실 때는 공황증상이었는데, 지금은 우울증상이 더 많고요.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 성격이 있어서 실수하는 걸 두려워하는 경향이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해요."

실제로 주요우울증 환자의 68%가 일생의 어느 시기에 불안장애 진단기준을 충족하고, 전혀 다른 카테고리인 불안장애 환자가 나중에 조현병이 발생할 확률이 여덟 배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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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의 서재

“그래서 제 진단이 뭔가요?”

“제게 처음 오실 때는 공황증상이었는데, 지금은 우울증상이 더 많고요.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 성격이 있어서 실수하는 걸 두려워하는 경향이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해요.”

“아니, 그래서 제가 공황장애라는 건가요, 우울증이라는 건가요?”

전공의라면 진단기준에 맞춰서 딱딱 진단명을 자신 있게 말했겠지만 30년 차 전문의는 갈수록 진단명을 똑 부러지게 말하기 힘들다. 환자를 볼수록 진단이 겹치기도 하고, 엉뚱한 증상들이 혼재해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7세에 등교에 대한 두려움으로 분리불안 장애로 진단받았던 아이가 10대 중반에는 강박증으로 찾아와 치료를 받는다. 20대가 되어서는 공황장애로 진단이 바뀌기도 한다. 실은 연령별로 내적인 불안의 표현형이 달라진 덕분이다.

실제로 주요우울증 환자의 68%가 일생의 어느 시기에 불안장애 진단기준을 충족하고, 전혀 다른 카테고리인 불안장애 환자가 나중에 조현병이 발생할 확률이 여덟 배 증가한다. 그렇다면 내가 돌팔이거나, 정신질환에 대한 분류체계가 기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여기기보다 모든 정신질환은 공통적 원인을 갖고 있는데 인생의 시기나 상황에 따라 표현되는 양상이 다를 뿐이라는 가설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나의 오랜 고민에 답을 제시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크리스토퍼 팔머의 ‘브레인 에너지’(심심)다. 저자 역시 고민을 똑같이 하다 더 나아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비만, 당뇨병, 심근경색, 뇌졸중, 통증장애, 알츠하이머 치매, 뇌전증을 가질 확률이 무척 높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당뇨병 환자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세 배 높고, 요병기간도 네 배가 길었다. 심근경색 환자의 20%가 1년 이내에 우울증을 경험하고, 우울증 환자가 향후 심근경색이 발생할 위험도 최소 50%가 증가했다. 즉 정신과 신체를 따로 보지 않고 전체로 보면 모든 질환의 공통경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정신질환의 특정한 원인 유전자를 찾는 연구가 실패한 것도, 한 가지 약물이 왜 우울증에도, 불안장애에도 작용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고전적 의학모델을 따르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저자는 음식을 섭취하고 에너지로 전환해 세포의 유지와 노폐물을 처리하는 과정인 ‘대사’에 주목하면서 그 과정의 에너지 과잉, 결핍, 부재라는 세 가지 문제를 공통 이슈로 지목했다. 그 핵심은 세포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존재이며 에너지 발전소 미토콘드리아였다. 정신질환은 뇌의 에너지가 과활성화 상태일 때 두려움·불안·환청·망상으로, 저활성화는 우울·기억력 저하·집중력 저하로, 특정한 뇌 기능의 부재인 상태가 사회성 부재인 자폐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에너지와 대사로 인간의 병을 하나로 원인, 미토콘드리아를 지목하는 책을 읽다 보면 솔직히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한 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 같은 회의론자에게도 공통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탐색과정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으니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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