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처럼 무시당한 이들의 분노" vs "트럼프 지지자들, 책임 돌리지 말라"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1. 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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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또 상류층이 이를 무시하는 태도도 노골적으로 잘못을 지적한다기보다는 그냥 불편하고 이상하다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식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일은 다행히 없었지만, 그냥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자기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괜한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글펐다고 밴스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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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트럼프 시대의 정치의 양극화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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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영화 “기생충”의 후반부 클라이맥스는 박 사장네 아들 다송의 생일파티 장면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장면 속 기택(송강호 분)이 박 사장(故 이선균 분)을 칼로 찌르기 직전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정서를 표현하는 데 알맞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바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은연중에 무시하는 이들, 세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입니다. 자신이 한 어떤 행동이나 실언이 무시당하는 게 아니라 숨길 수 없는 서민의 냄새가 무시당하는 이유입니다. 또 상류층이 이를 무시하는 태도도 노골적으로 잘못을 지적한다기보다는 그냥 불편하고 이상하다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식입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의 자전적 회고록인 책 '힐빌리의 노래'에는 밴스가 로스쿨에서 겪은 탄산수와 관련한 일화가 등장합니다. (링크는 해당 부분을 발췌한 글)
[ https://www.foxnews.com/opinion/j-d-vance-what-i-didnt-know-how-the-world-of-the-american-elite-works ]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 밴스는 부푼 꿈을 안고 인턴을 뽑으러 온 로펌의 채용 이벤트에 지원합니다. 이 가운데 한 로펌에서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아 난생처음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게 됩니다. 식사 중에 밴스는 태어나 처음 탄산수를 마시게 됐는데, 입에 대자마자 뱉어버렸습니다. 기포가 있는 물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반짝이는(sparkling) 물이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다가 놀랐던 거죠. 다행히 밴스가 당황했다는 사실은 동기생 한 명밖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밴스는 자기가 평생 보고 자란 세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엘리트들이 사는 세상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일은 다행히 없었지만, 그냥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자기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괜한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글펐다고 밴스는 말합니다.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어떤 점에 반응해 마음을 정하고 후보를 고를까요? 물론 유권자마다 기준이 다를 테고, 선거 때마다, 또 쟁점이 되는 이슈에 따라서도 다를 겁니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두 후보의 특징과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고 심사숙고 끝에 결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어떤 한 가지 사건 혹은 계기에 반응해 투표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그 이유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그렇다면 더욱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표에 담았다는 분석이 일리가 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트럼프의 승리라면 일등공신은 이것? 진보 진영이 간과한 한 가지"
[ https://premium.sbs.co.kr/article/1D1H2bViA ]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가 쓴 칼럼도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스티븐스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중에는 보수적인 편에 속하지만, 미국 언론 전체를 놓고 보면 중도 성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스티븐스가 만약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가장 큰 문제는 진보 진영의 “잘난 척”과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한 뿌리 깊은 무시 때문일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분히 논쟁적인 주장이지만, 수긍이 가는 지점도 많았습니다.

우선 잘난 척, 낙인찍기, 가스라이팅, 과도한 낙관론을 지적한 부분은 일리 있는 지적, 아니 날카로운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 진영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종종 트럼프 지지자들을 동료 시민이 아니라 괴물처럼 묘사하곤 합니다. 물론 다양성이 높은 도시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트럼프 지지자들 대부분은 그냥 평범하게 살았을 뿐인데 공화당을 지지하고 트럼프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인종차별주의자에 천하에 몹쓸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도 일을 열심히 해서 가정을 꾸리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생각하는 젊은 남성도 시대에 뒤처진 사람 취급받습니다. 심지어 여성혐오주의자 딱지를 막 붙이기도 하죠.

게다가 트럼프 지지자들 보기에, 이 진보주의자들은 잘난 척이 몸에 배어 있어서 사사건건 자신이 정답을 다 안다며 오만하게 남을 가르치려 듭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지표와 체감 경기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데, 실제로 내 월급은 오르지 않아서 장 보러 가서 계란이나 우유, 빵을 사기도 부담스러워졌는데 오히려 간단한 그래프도 이해 못 한다며 나를 꾸짖습니다. 고통받는 건 난데 내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 고통을 재단하려 합니다. 트럼프는 적어도 우리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데 말이죠.

다만 나머지 세 가지, 즉 고집불통의 정치, 이중잣대, 정체성 정치를 지적한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거나 너무 사소한 부분을 침소봉대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리스가 경선을 거치지 않고 대선 후보가 된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민주당 안에서도 필요한 절차를 밟은 만큼 일단락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이 점을 문제 삼는 사람은 대부분 트럼프 지지자가 많습니다.

이중잣대에 대한 비판도 전혀 비슷하다고 볼 수 없는 문제를 동일 선상에 놓고 양비론을 폈기에 문제가 많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대법원을 자기와 같은 성향의 판사들로 채우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공화당은 2016년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망했을 때 그 자리를 메릭 갈랜드 현 법무장관으로 채우려 한 오바마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을 인사청문회도 열지 않고 버티며 무산시켰습니다. 자그마치 선거까지 9개월을 버텼죠. 이건 트럼프의 잘못이 아니라 상원 공화당 리더였던 미치 매코널 의원의 작품입니다. 같은 상원은 2020년 9월 긴스버그 대법관이 사망한 지 불과 38일 만에 일사천리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임명했습니다. 임기 4년 동안 무려 세 명이나 대법관을 임명한 트럼프가 운도 좋았지만, 이중잣대를 적용해 대법원을 보수화하는 데 앞장선 공화당의 전략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해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심판을 받았고,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고, 자기랑 성향 비슷한 판사 임명하려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는 건 균형 잡힌 지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언론사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는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가 소셜미디어 기업을 검열했다는 사실을 동일 선상에 놓은 것도 억지입니다. 통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투명하게 취재하기 위해 정당한 질문을 던지는 언론사를 비난하고 겁박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가 소셜미디어를 검열했다며 예로 든 기사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백신 음모론을 비롯한 가짜뉴스를 걸러내 국민들이 정확한 방역 수칙을 접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한 겁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릅니다.
[ https://www.reuters.com/technology/zuckerberg-says-biden-administration-pressured-meta-censor-covid-19-content-2024-08-27/ ]

정체성 정치에 관한 비판은 합리적인 지적이지만, 스티븐스가 글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한 점, 즉 이번 선거가 워낙 박빙이다 보니 유권자들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공약을 던지려고 내놓은 전략으로 보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인종을 콕 집어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것보다 저소득층 전반을 대상으로 필요한 지원을 확충하는 정책이 물론 낫습니다. 그런데 둘 중에 그런 정책을 더 잘 마련한 쪽은 해리스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물론 평가는 지지 후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겠지만요.
[ https://premium.sbs.co.kr/article/HeC-JpeRQW9 ]
 
뉴욕타임스 독자의 댓글
스티브스의 이번 칼럼에 대한 뉴욕타임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 인상적이어서 옮겨봤습니다.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사는 스테파니라는 독자가 남긴 댓글입니다.
[ https://www.nytimes.com/2024/10/22/opinion/trump-kamala-harris-democrats.html#commentsContainer ]
 
한마디로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의 논리적으로 허점투성이인 칼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트럼프 지지자들은 8년 전 처음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요. 트럼프가 집권했을 때 경제가 “눈부시게” 좋아서, 바이든 때는 경제가 나빠서 마음을 바꿨거나 새로 유권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민주당이 트럼프를 실제 모습 그대로 인종차별주의자에 여성혐오자, 파시스트라고 부를수록 트럼프 지지자들을 소외시킨다는 끝없는 불평은 지겹습니다. 이건 낙인찍는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트럼프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반역자니, 미쳤다느니 뒤틀린 사람, 거짓말쟁이, 패배자라고 욕하고 비아냥대는 거야말로 진짜 낙인찍기입니다.

트럼프가 승리하면 그 원흉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트럼프를 뽑은 사람들입니다. 그는 명백히 부도덕하고 무지하고 이기적이며, 공직을 맡을 일말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결과를 뒤집고 흠집 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미국의 적국에 기밀 정보를 제공했고, 자신의 정적을 처단하는 데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고 있습니다. 이건 트럼프의 측근만 아는 정보가 흘러나온 게 아닙니다. 틈만 나면 공개적으로 트럼프가 입에 담는 말입니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은 나중에 트럼프가 했던 말과 행동을 보고 놀라선 안 됩니다. 자신이 오해했다고 나중에 변명해서도 안 되고, 진짜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트럼프가 정치에 뛰어든 지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 시점에선 그렇다는 겁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정치나 태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분명 트럼프보다 명백히 국가를 위해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다시 집권한다면, 그 주범은 트럼프를 선택한 어리석은 유권자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대한 책임은 결국 유권자가 집니다. 마치 유권자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애꿎은 피해자가 된 것처럼 묘사하려는 시도는 당장 그만뒀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얼마나 이 글에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칼럼을 읽은 뉴욕타임스 독자 중에는 2천 명 넘는 사람이 추천한 댓글입니다. 물론 스티븐스가 이 댓글을 보면 또다시 바로 이런 태도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무시하는 문제의 “잘난 척”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꾸짖고 면박 주면서 그들에게 표를 얻을 생각을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고도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상대방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중요한 건 오히려 우리 편을 찍어줄 사람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은 지난 글에서 짚은 대로입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R0xsvd5YO ]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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