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아이] 美대선 누가 승리하든 기다리는 것은 ’분열된 나라’
다음 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의 판세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서울 정도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승자는 나오겠지만 둘 중 누가 승리하더라도 후유증은 불가피해 보인다. 불화와 분열이 판치는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현실이다.
◆관건은 7개 경합주
최근의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아직까지도 여전히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측이 정책 대결보다 네거티브 공세에 주력하는 것은 이렇게 대선 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초박빙으로 흐르고 있는 탓이다. 역대급 접전이 이어지자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려는 전략이다.
일단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막판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승부를 결정지을 7개 경합주의 우열은 시시각각 바뀌는 양상이다.
전체 선거인단 538명 가운데 과반인 270명을 확보하면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현재 225명, 트럼프 전 대통령은 218명의 선거인단을 사실상 확보했다. 관건은 7개 경합주다. 93명의 선거인단이 7개 경합주에 배정돼 있다. 북부 러스트벨트인 펜실베이니아(19명)·미시간(15명)·위스콘신(10명), 남부 선벨트인 노스캐롤라이나(16명)·조지아(16명)·애리조나(11명)·네바다(6명)이다. 후보 득표율에 따라 선거인단을 배분하는 메인주 2선거구 및 네브래스카 2선거구에서도 각 1명의 선거인단이 부동표로 분류된다.
경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펜실베이니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시나리오 분석 모델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이기면 해리스 부통령은 12개의 승리 조합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6개의 승리 조합이 가능하다.
반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기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6개의 승리 시나리오가 가능하게 되고,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할 수 있는 조합은 13개에 그친다.
해리스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기는 것을 전제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승리 방정식은 미시간, 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의 '블루월' 복원이다. 북부 경합주인 이 3곳은 애초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깔인 파란색 지역으로 분류됐으나 제조업 등의 쇠퇴로 러스트벨트가 되면서 경합주가 된 곳이다.
만약 해리스 부통령이 이번에 '블루월'을 복원하면 게임은 사실상 끝난다. 이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기는 경우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합주 4곳과 메인 및 네브래스카 2선거구에서 승리하면 269 대 269로 선거인단이 같아진다. 동수가 나오면 차기 대통령은 하원에서, 부통령은 상원에서 결정된다. 각 주에서 한 명의 대표를 선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미국의 주가 50개니 과반수는 26표다. 미국에는 농업이 주산업인 주들이 많기 때문에 이 방식은 공화당, 즉 트럼프에게 유리하다.
◆당선 확정 늦어지면 대혼란
결국 투표함 뚜껑을 모두 열어봐야 승부를 가릴 수 있다. 격차가 너무 적다면 모든 투표용지를 개표한 이후에도 승패를 확정해 발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의 경우 선거 당일 우편투표에 대한 개표가 시작되므로 결과 발표가 늦어질 수 있다. 일부 주는 선거 결과 표차가 일정 수준 이하면 재검표가 이뤄질 확률이 크다.
미시간주의 경우 표차가 0.5% 포인트 이하이면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고, 조지아주는 0.5% 포인트 이하이면 자동으로 재검표가 진행된다. 위스콘신의 경우 1% 포인트 이내로 격차가 나오면 재검표 요청이 가능하다. 이들 주에서는 재검표 후에도 결과에 불복해 선거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선 유권자들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 선거인단이 오는 12월 17일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 이전에 각 주에서 선거인단을 확정하지 못하면 미국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일각에선 극심한 분열로 '남북전쟁'에 버금가는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위기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거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행동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이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폭력 문제도 한 몫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월 6일 극렬 트럼프 지지층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여름 트럼프에 대한 두 차례 암살 시도 역시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주었다.
여기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 탓이 크다는 평가다. 분명히 그의 언행은 문제가 있고 이는 미국의 '분열'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트럼프 현상'은 분열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분열의 계기는 2001년 9·11 테러였다. 테러의 직접적 피해를 입은 곳은 뉴욕을 포함한 동부 지역이었다. 하지만 동부지역 여론은 보복 공격을 경계했다. 그러나 참사와 무관한 중서부에서 '풀뿌리 보수주의자'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면서 전쟁론이 확대됐다.
그 결과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이라크에서도 전쟁을 일으켰다. 평화가 필요하다고 믿는 진보주의자들과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으니 보복이 필요하다고 믿는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갈수록 심각해져 지금 이 지경에까지 왔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새 정권을 기다리는 것은 '분열된 미국'이다. 무너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면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한국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자각, 유권자들의 현명한 심판이 없다면 우리가 미국보다 더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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