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라는 아이러니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한겨레 2024. 11.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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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 연합뉴스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대한민국이 드디어 노벨 문학상 보유국이 됐다. 직전까지 맨부커상, 아카데미 작품상,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1위 보유국이었다. 요 며칠은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식 술 게임에 빠져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고 있다. 지난달에는 강연을 갔다가 들른 순댓국집에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몰려와 옆자리에 앉았다. “이모, 다대기 좀 주세요” 하는데 딕션이 나보다 좋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니다) 저학년 때까지 교과서 맨 앞장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로부터 대략 40년, 진짜 “민족 중흥”이 온 건가 싶다. 평소 국가 중심적 사고방식을 비판해왔지만 오늘만큼은 국가와 민족을 말해보기로 한다. ‘근데 이제 세대를 곁들인.’

‘상상된 공동체’라는 책이 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상상된 공동체’가 의미하는 건 민족(nation)이다. 제목만 보고 ‘역시 민족이란 상상에 불과해!’, 즉 민족의 허구성에 대한 책이라 오해한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랬는데 읽어보니 전혀 아니었다.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오히려 민족이 허구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상상을 통해 민족이 현실적 실체가 되었다 말한다. 즉, 저 책은 ‘상상된 공동체’라 쓰고 ‘실현된 공동체’라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으므로 우리 중 누군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솟아나는 게 당연한 것일까? 그럴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친밀감이 느껴지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잘됐다고 내 기분이 꼭 좋으란 법도 없다.(잊지 말자.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갑자기 배가 아파 오는 민족이다.)

‘케이컬처’(K-Culture)의 이 엄청난 성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지금이 한국 문화 최고의 화양연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1990년대의 ‘문화 대폭발’을 청년기 한가운데서 만끽한 이른바 ‘엑스 세대’ 일부가 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 젊은 시절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일본의 농구만화 ‘슬램덩크’가 실시간으로 연재되던 시절, 이름도 잊어버린 어느 평론가의 글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슬램덩크’에 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던 당시 청소년들, 훗날의 엑스 세대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린 ‘공포의 외인구단 세대’지만 이들은 ‘슬램덩크 세대’다. 외인구단의 야구는 가난과 멸시를 보상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흐르도록 처절했다. 슬램덩크 세대는 다르다. 이들에게 농구는 한풀이 수단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이며 즐거운 목표다. 그래서 밝고 희망적이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나의 혁명이 아니다.” 68혁명의 구호가 된 에마 골드먼의 이 말을 ‘엑스 세대’ 일부는 진심으로 믿었다. 혁명의 최종 목표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엑스 세대’와 ‘386 세대’는 같았다. 그러나 ‘엑스 세대’의 방점은 ‘자유’와 ‘개인’에 있었기에 ‘386 세대’ 특유의 집단주의에 끝내 동화될 수 없었다. 작가 한강이 대학생일 때, 가장 지적이던 그의 또래는 페미니즘 이론을 누구보다 치열히 공부했다. 그리고 낙후된 운동권 선후배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바로 ‘영 페미니스트’라 불린 사람들이다. 6년 전 칼럼에서 썼듯이, 1990년대 그토록 명석했던 ‘영 페미’들이 없었다면 “운동권 내 성폭력 공론화도, 호주제 폐지도, 성매매방지법과 성매매처벌법 제정도, 직장 내 성희롱 방지 교육도 불가능했거나 한참 늦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1990년대가 없었다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없었거나 지금과 전혀 다른 작품이 됐을지 모른다.

이것은 케이컬처가 단지 특정 세대의 산물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채식주의자’ 등을 세계적 작품으로 만든 요인이 복합적이고 역설적이라는 것이다. 케이컬처는 국가폭력, 승자독식 능력주의, 유교적 가부장제, 살인적 노동착취 및 특유의 과로 문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동시에 케이컬처는 그 문제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또한 가능했다. 그렇게 케이컬처는 모두 함께 만든 공동체 문화이자 아이러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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