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분간 32역 소화 관록의 무대…김성녀 연극 '벽 속의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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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집 안 갈 거야. 엄니 하고 같이 있을 거야."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 김성녀(74)가 결혼하기 싫다며 어머니에게 떼를 쓰더니 아이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지난달 31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벽 속의 요정'은 김성녀의 관록이 빛나는 작품이다.
김성녀가 각기 다른 캐릭터로 부르는 12곡의 노래는 연극과 뮤지컬을 함께 보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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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나 시집 안 갈 거야. 엄니 하고 같이 있을 거야."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 김성녀(74)가 결혼하기 싫다며 어머니에게 떼를 쓰더니 아이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귀여운 율동과 심통 난 표정 연기도 곁들인다.
"싫어. 싫어. 시집가기 나는 싫어∼ 얼굴도 모르는 신랑 나는 정말 싫어∼"
투정을 부리는 것도 잠시, 어느새 그는 식을 올리고 신방에 들어선다.
"그만 잡시다. 안 잘 거요?"
남편은 걸걸한 목소리로 아내를 달랜다.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모르는 게 느껴진다.
지난달 31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벽 속의 요정'은 김성녀의 관록이 빛나는 작품이다. 그는 뮤지컬 모노드라마 장르인 이 작품에서 무려 32개의 배역을 소화한다. 철없는 여자아이부터 엄한 할아버지까지 자유자재로 말투와 목소리를 바꿔가며 관객을 극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스토리는 스페인 내전 당시 30년 동안 벽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아간 아버지와 딸의 실화에서 따왔다.
일본 작가 후쿠다 요시유키의 원작을 극작가 배삼식이 한국전쟁으로 30년간 벽 속에 숨어 살아온 아버지와 홀로 가정을 지킨 어머니, 벽 속에 요정이 산다고 믿는 딸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당초 번안을 반대했던 원작자는 한국 공연을 보고서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김성녀는 50대 중반이던 2005년 첫 공연 때부터 이 작품을 이끌었다. 초연 당시 예술계 최고 영예인 올해의 예술상과 동아연극상 연기상 트로피를 거머쥐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초연 20년째를 맞아 열리는 이번 공연에서 김성녀는 이전보다 힘을 뺀 연기로 120분간 집중력을 발휘한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캐릭터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이 같은 '내려놓음'에서 나온 듯하다.
음악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즐길 거리다. 김성녀가 각기 다른 캐릭터로 부르는 12곡의 노래는 연극과 뮤지컬을 함께 보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안긴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일명 '계란 팔이' 장면이 대표적이다.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그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객석으로 나와 관객에게 달걀을 건넨다. 그의 능청스러운 즉흥 연기에 관객들 사이에선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무대로 돌아간 그는 순식간에 구슬픈 톤으로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이어간다. 몇 분 사이에 달걀을 소재 삼아 완전히 상반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김성녀는 극단을 통해 이번 공연이 '벽 속의 요정'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이 공연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하지만 극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그건 배우로서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공연은 아마 그런 결정을 지을 기회일 것 같다"며 "체력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의 연출도 김성녀의 남편이자 연극계 거장 손진책(77)이 맡았다. 공연은 오는 10일까지 총 열흘간 열린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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