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윤 대통령 부부 “윈터 이즈 커밍”
2024년 가을 정국의 키워드는 김건희, 검찰 그리고 탄핵이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불기소 처분 이후 정치 상황이 요동치는 가운데 마침내 탄핵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1월2일 ‘김건희 규탄 범국민대회’를 개최한다. 김건희 여사 특검의 필요성을 호소할 예정이지만, 정치권에서는 탄핵 여론전의 서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동은 성명을 통해 “롱패딩을 준비할 것”이라면서 연말까지 장외 집회를 열 계획임을 밝혔다.
조국혁신당은 탄핵을 공론화했다. 10월26일 ‘검찰 해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언대회’ 개최를 알리며 “8년 전 그때(박근혜 대통령 탄핵)처럼, 두꺼운 옷과 목도리, 장갑을 준비해달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원내정당 가운데 가장 먼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당론으로 정한 진보당도 민의를 모으기 위한 국민투표 운동에 돌입했다.
정치적 임계점을 넘어서게 한 것은 검찰이었다. 10월17일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으로 달아올랐던 야권의 대여 투쟁에 기름을 부었다.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 법치의 사망선고”라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야당의 파상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와 집권 여당은 갈피를 못 잡고 민망한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10월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만남이었다. 여권 일각에서 ‘윤·한 회동’으로 김 여사 논란이 매듭지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으나 ‘빈손 회동’을 넘어 집권 세력의 난맥상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윤 대통령 측은 여당 대표를 기다리게 하고, 원탁에서 대화하자는 요청을 묵살하고, 여당 대표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서는 보란 듯이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따로 불러 만찬을 진행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훈계하는 듯한 면담 사진을 대통령실이 공개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한동훈의 굴욕’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개된 면담 내용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한 대표가 김 여사 관련 의혹 규명에 협조를 요청하자 윤 대통령은 “의혹이 있으면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구체화해서 가져와 달라”고 말했고, 대통령실 내 ‘김 여사 라인’ 정리 요구에 대해선 “여사랑 소통할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반박했다고 전해졌다. 대통령실이 면담 내용을 공개한 10월22일 윤 대통령은 부산 범어사를 방문해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라고 공개 발언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윤·한 면담’ 내용이 공개된 시점은 회동 당일이 아니라 이튿날이었다. 전날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국정감사 동행명령을 집행하려 한 데 대해 대통령실이 “폭력적”이라며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반발한 직후였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출입기자들에게 “요즘 궁금해하시는 게 많아서 설명드리겠다”라며 예기치 않게 백브리핑(공식 보고 이후 비공식적으로 이어지는 보고)을 통해 회동 내용을 공개했다. 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대통령실이 요즘 김 여사 관련 사안에 대한 언론 응대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불통’만 재확인한 회담 내용을 뭐하러 뒤늦게 공개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한동훈 대표는 이후 대통령실이 면담 내용을 ‘각색’했다는 취지의 불만을 표했다.
채 해병 사건과 공천개입 의혹 ‘탄핵 뇌관’
대통령과 여당이 당면한 위기를 헤쳐나가지 못하는 사이, 정국의 시한폭탄은 시시각각 째깍거리는 중이다. 관련 이슈가 차고 넘치지만 핵심 뇌관은 정치 컨설턴트 명태균을 매개로 한 김건희 여사 국정 개입, 그리고 윤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 여론조작 의혹이다.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해온 강혜경씨는 10월21일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 80여 차례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김건희 여사는 여론조사 비용 대신 김영선 전 의원을 재보선 후보로 공천해줬다고 주장했다. 공천 대가로 김영선 전 의원이 명씨에게 국회의원 세비의 절반을 제공했다고도 주장했다.
사실로 드러난다면 큰 파급력을 가진 증언이다. 여론조작 자체도 심각한 문제거니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당장 정치자금부정수수죄에 해당한다. 공천개입 의혹은 탄핵과 직결되는 문제다. 선출되지 않은 김건희 여사가 국정 운영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유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앞서 명태균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잡아넣을 건지 말 건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검사에게 묻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을 탄핵시킬 만큼 치명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호언이었다.
여기에 더해 10월31일 더불어민주당이 명태균씨와 통화한 윤석열 대통령의 음성이 담긴 녹취를 공개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경남 창원 의창 지역구에 김영선 전 의원을 공천하도록 당에 전했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실은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녹취 시점이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2022년 5월9일이어서 당시 윤 대통령의 신분을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도 나오지만,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물증이 공개된 만큼 정국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조국혁신당은 탄핵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탄핵 사유를 정리한 ‘탄핵소추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제3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권한을 남용하거나 국가기관 및 조직을 동원한 것(채 해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공직자가 아닌 자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에 반영한 것(김 여사 공천개입 의혹) 등이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11월 장외 투쟁은 ‘이재명 방탄 투쟁’이라며 날을 세웠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11월 1심 판결이 다가오면서 야당의 대통령 탄핵 선동 수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라고 말했고, 서범수 사무총장도 “이재명 대표 선고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여론몰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을 공론화하지는 않고 있다. 일부 정치인이 회의석상에서 ‘탄핵’ ‘하야’ 등을 언급한 적은 있으나 아직은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표 측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좌초되는 건 국가적 손실이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야권이)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정치적 격변’ 가능성을 속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윈터 이즈 커밍(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고 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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