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무실 상공 무인기 누가 보냈나?

김창수 2024. 11. 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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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 방공망이 뚫렸다. 무인기가 김정은 위원장을 비방하는 전단을 뿌렸다. 북한 당국은 혼선에 빠졌고, 윤석열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살리지 못했다.
10월1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해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위기관리는 무능하고, 위기 증폭 능력은 타고났다. 보수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는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남북 관계 정책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이런 목표가 사라졌다. 군사적 긴장은 나날이 고조되고, ‘이러다가 뭔 일 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커지고 있다.

평양 방공망을 뚫고 들어간 무인기(드론)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무실 상공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 북한은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라며 반발했지만 ‘재발 방지’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안보에 유능하고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는 정부라면 이 메시지를 포착해야 했다.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북한에 신속하게 군사 당국자 회담을 제안해야 했다. 회담이 성사된다면 긴장 완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회담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북한의 강경 발언에 대응할 명분을 쥐게 된다. 명분 있는 대북 제안은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되돌아보면 북한 초기 대응에도 어리숙한 점이 엿보였다. 윤석열 정부가 이 틈을 파고들어야 했다. 위기 안에 기회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기회는 버리고 위기만 악화시켰다.

10월11일 북한 외무성은 ‘중대 성명’ 형식으로 “한국은 지난 (10월)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 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대북 전단)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라고 발표했다. 10월12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문에서 “한국 군부 자체가 이번 사건의 주범이거나 공범임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다”라며 “우리 수도의 상공에서 대한민국의 무인기가 다시 한번 발견되는 그 순간 끔찍한 참변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외무성 성명이나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는 무인기 침투를 격렬하게 항의하는 내용이었지만 재발 방지 촉구로 마무리했다. 해법을 찾는 실마리가 담겨 있었다. 북한의 입장 발표는 계속 이어졌다. 10월13일 국방성 대변인 담화와 김여정 부부장의 추가 담화도 국방부 규탄과 재발 방지가 핵심 내용이었다.

10월14일 김여정 부부장 담화에서 입장이 바뀌었다. 김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 담화에서 “우리는 평양 무인기 사건의 주범이 대한민국 군부 쓰레기들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 핵보유국의 주권이 미국 놈들이 길들인 잡종개들에 의해 침해당했다면 똥개들을 길러낸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갑자기 미국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의 발언 변화를 통해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은 이번 사안을 심각한 국가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것. 둘째, 북한 당국의 판단에 혼선이 있다는 점이다.

무인기가 침투해 평양 상공에서 대북 전단을 뿌렸다는 의미는 평양 방공망이 뚫렸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가 있는 평양 중구역 상공이었다. 조선노동당 본부 청사는 김정은 위원장 집무실이 있고, 노동당 주요 회의가 열리는 곳이다. 북한이 결사 옹호하겠다고 장담한, 이른바 ‘당중앙’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김정은 집무실 상공이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것은 북한 군부로서는 심각한 사태다. 1인 수령 체제 사회에서 수령 보위가 위협받는 중대 사건으로 군부는 인식했다. 북한 군부는 2020년 미군에 암살당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떠올렸을 것이다. 2020년 1월3일 미국은 군사용 드론 ‘MQ-9 리퍼’를 이용해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암살했다.

북한 외무성이 공개한 대북 전단. ⓒ평양 조선중앙통신

김여정이 미국 책임론 제기한 이유

평양 방공망을 무력화한 무인기가 살포한 전단에는 김정은 위원장을 모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수령(지도자)을 최고 존엄으로 여기는 1인 체제 사회에서 수령의 집무실이 있는 상공에서, 수령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이 뿌려졌다는 것은 수령 보위에 실패한 사건이다. 북한으로서는 암살 사건에 버금가는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평양 방어, 수령 보위라는 측면에서 무인기 사건은 북한에 미칠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령 보위에 실패했다는 불안감이 혼선을 낳았다. 첫 번째 혼선은 무인기가 침투했을 때 초기 상황판단을 분명하게 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북한 외무성은 10월3일, 9일, 10일 세 차례 심야에 무인기가 침투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10월7일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찾아 연설했다. 이 연설에는 이런 긴박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한·미 동맹이 핵 동맹으로 변하고 있다며, 핵 능력으로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 상공 무인기 침투는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심각한 사안이다. 첫 번째 침투(10월3일) 이후 연설(10월7일)에서 김 위원장이 이 사실을 외면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남한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건드리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무인기 침투를 남한이 자신들을 건드리는 좋은 사례로 적시할 만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첫 번째 침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혼선은 김여정 부부장의 입장 변화에서 읽을 수 있다. 10월11일부터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 외무성, 국방성 등이 조율해 입장을 발표했다. 처음부터 남한 군을 의심하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국방성은 평양 상공에 침투한 무인기에 대해서 “특정한 발사대나 활주로가 있어야 이륙”할 수 있다며, “민간이 날려 보냈다는 변명은 통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화면을 본 전문가들은 민간 상업용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100만원 안팎으로 판매되는 드론도 비행거리가 최대 300㎞, 비행시간은 최대 5시간이다. 이런 종류의 드론은 발사대나 활주로가 필요 없고 수직 이착륙도 가능하다.

북한 외무성이 공개한 무인기와 대북 전단 살포 화면. ⓒ평양 조선중앙통신

김여정 부부장이 10월14일 갑자기 미국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외무성과 조율한 결과로 보인다.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방한과 메시지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터너 특사는 10월10일 한국 외교부 당국자를 만나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제고하는 데 청년 세대 관여 확대 노력을 강화해나가자”라고 말했다.

앞서 8월14일 터너 특사는 북한인권법 20주년을 맞이해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에게 어떠한 정보든지 계속 더 많이 전달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KBS 인터뷰에서도 “유용하고 새로운 (정보 유입) 도구 탐색에 계속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당시 KBS는 이를 보도하면서 “다만 위성이나 드론 활용 등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위성이나 드론 활용 방식이 터너 특사가 말한 ‘새로운 도구’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10월7일 칼 거슈먼 전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 회장도 방한해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과 만나 “북한 젊은 층에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은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단체와 우호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직이다.

이같이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북한에 대한 정보 전달을 강조하자, 그 반발로 김여정 부부장이 무인기 침투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 상공에 무인기가 침투한 상황에서 풍선이 아닌 ‘새로운 도구’로 북한에 정보를 유입하겠다는 미국 당국자의 잇단 발언을 오비이락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민족의 혈맥’ 폭파한 손자

평양 상공에 무인기가 침투한 중차대한 사태를 두고 북한은 중앙군사위원회를 소집하지 않고 한시적인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열었다. 이는 중앙군사위원회 핵심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차원으로 보인다.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은 시대에 북한 군사 부문에 대한 지도부 역할을 했던 이병철과 박정천이다. 이 둘은 김 위원장이 소집한 협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평양 상공이 무인기에 뚫린 것은 10월3일인데, 11일이나 지난 10월14일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는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가 열린 것도 초기 판단에 혼선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이 협의회의 결론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무인기 사태에 대해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김여정 부부장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담화를 낸 걸로 보인다.

북한이 10월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사진은 우리 군 CCTV에 잡힌 경의선 도로 폭파 장면. ⓒ합참 제공

협의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다음 날인 10월15일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폭파했다. 그동안 북한 인사들은 김일성 주석이 철도와 도로는 ‘민족의 혈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북 사이 철도와 도로 연결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할아버지(김일성)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도로를 손자(김정은)가 폭파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부터 밝힌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다. 무인기 사건 대응 차원에서 북한이 취한 조치가 아니라는 의미다(〈시사IN〉 제852호 ‘교전국 관계라는 낯설고 심각한 위기’ 기사 참조). 무인기 사건으로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위기를 증폭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무인기 사건과 도로 폭파가 맞물리면서 남북이 ‘두 개의 국가’라는 것을 입증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한다면, 북한은 숨 고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 시간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무인기 사건을 두고 북한의 반발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10월19일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지난 (10월) 13일 사회안전성 평양시안전국은 평양시 형제산구역 서포1동 76인민반 지역에서 추락된 무인기 잔해를 발견했다”며 “조사 결과 대한민국발 무인기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수거된 무인기가 기체 외형이나 비행 추정 시기, 기체 아래 삐라(전단) 살포통이 그대로 부착돼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평양시 중심부에 대한 삐라 살포에 이용된 무인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리 판단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결론은 아직 미정”이라고 덧붙였다.

‘혹독한 대가’가 말로만 그칠지, 도발로 이어질지 윤석열 정부는 바라만 보고 있다. 남북 관계는 더 메말라가고 남북 대결은 불똥을 튕기고 있다. 작은 불씨가 메마른 광야를 불사를 수 있다. 유능한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국민을 안심시키지만, 무능한 안보는 불안감만 키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그렇다.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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