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개발 바람에 날아간…나비와 집게벌레의 삶터[멸종열전]
샌프란시스코 모래 언덕서만 살던 나비
도시화 열풍에 서식지 파괴되며
외래종까지 침입해 결국 자취 감춰
세인트헬레나섬 집게벌레도 같은 운명
지역 고유 생물 멸종 ‘생태계 위기’
로드하우섬에서 살아가던 대벌레
인간이 발견해 멸종 위기서 구한 사례
보호할 것인지, 사라지게 할 것인지
개체의 미래는 인간 선택에 달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모래 언덕 위 아침 안개 사이로 가는 햇살이 비춘다. 해안 초목의 차분한 녹색을 배경으로 찬란한 푸른빛이 이리저리 튀어다닌다. 풀꽃 사이로 내려앉았다가 솟아오르는 파랑나비의 날갯짓은 한순간의 붓놀림이었다. 사방은 고요하지만 부드러운 생명의 날갯짓으로 가득한 풍경이 도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줄 미처 몰랐다.
이야기는 1840년대 캘리포니아 황무지로 금 노다지의 꿈을 안고 찾아온 프랑스인 피에르 로르켕으로 시작된다. 그는 금을 찾지는 못했지만 운 좋게도 나비채를 가지고 왔다. 로르켕은 샌프란시스코의 모래 황무지에서 오렌지황금나비, 밀리타초승달나비, 녹색털부전나비 등 13종의 신종 나비를 채집했다. 그는 나비들을 친구인 파리 박물관의 장 바티스트 데쇼푸르 드 부아뒤발에게 보냈다.
의사이자 식물학자이며 나비학자였던 부아뒤발은 1852년 로르켕이 보낸 13종 중 하나에 스파르타와 싸웠던 페르시아 왕의 이름을 따서 글라우코푸스케 크세르세스(Glaucopsyche xerces)라는 학명을 지어주었다. 크세르세스의 철자가 영어(xerxes)와 불어(xerces)가 달라서 곤충학자들에게는 골칫거리다. 일반명으로는 크세르세스파랑나비라고 한다.
수컷의 윗면은 캘리포니아의 맑은 하늘색과 일치한다. 암컷은 위에서 보면 녹슨 갈색처럼 보인다. 아랫면은 수컷에게는 흰색 물방울무늬가, 암컷에게는 흰색 원이 있는 검은 점이 배열되어 있다. 부아뒤발이 런던 자연사박물관과 브뤼셀 자연사박물관에 판매한 컬렉션을 보면 크세르세스파랑나비 날개 무늬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화의 희생자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취미로는 수집이 대세였다. 미국 전역의 많은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의 물방울무늬 나비를 위시리스트에 올렸다. 골드러시 이후 샌프란시스코가 모래 언덕을 넘어 서부로 확장되면서 이 나비의 서식지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었다. 나비가 알을 낳는 데 필요한 식물 숙주인 노란덤불루핀과 사슴풀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방목한 말과 소가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크세르세스파랑나비는 오로지 샌프란시스코의 모래 언덕에만 살았다. 태평양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드리우는 차가운 여름 안개 때문에 남쪽과 동쪽의 따뜻한 곳으로는 퍼지지 못했다. 1875년 샌프란시스코의 나비학자 허먼 베어가 친구인 허먼 스트레커에게 보낸 편지는 이후 수십년 동안 크세르세스파랑나비에 관한 모든 기사에서 인용되었다. “크세르세스파랑나비는 이제 샌프란시스코 시내 지역에서 멸종했네. 이 곤충이 발견되던 지역은 건물 부지로 바뀌었고 닭과 돼지 사이에서는 더 이상 나비가 날 수 없게 되었지.”
당시 나비학자들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채집 장소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인간의 활동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910년 F X 윌리엄스가 ‘샌프란시스코의 나비’에 관한 기사를 곤충학회지에 기고한 후에야 비로소 그 연관성이 밝혀졌다. “나비 수집가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 종의 표본을 상당수 채집해왔지만, 자연 서식지가 충분히 훼손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에도 이 종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희귀한 나비 한 마리를 위해 땅을 보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지역화된 샌프란시스코 종은 정말 독특한 서식지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세르세스파랑나비는 외래종 유입의 영향도 받았다. 토착 개미는 숙주식물에서 크세르세스파랑나비의 애벌레를 돌보았다. 다른 포식자로부터 애벌레를 돌보는 대신 애벌레의 등에서 달콤한 꿀 물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 개미들이 진딧물을 보호해주면서 진딧물에게서 달콤한 체액을 얻는 것과 같다. 그런데 아르헨티나개미가 샌프란시스코 모래 언덕에 침입하자 토착 개미 종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1919년 크세르세스파랑나비는 샌프란시스코 경계의 모래 언덕 근처 한 지역에서만 발견되었다. 1930년대 수집가였던 윈드라는 사람이 ‘더 적합한 장소’로 이전을 시도했지만 그의 노력도 결국 실패했다. 1943년 3월23일, 유명한 나비학자 해리 랭 박사가 마지막으로 몇 마리의 크세르세스파랑나비를 채집했다. 몇년 후 어느 기자가 그를 현장으로 다시 데려갔을 때, 당시 86세였던 과학자는 자신의 행동이 알려지는 게 싫다고 말했다. “내가 날아다니는 글라우코푸스케 크세르세스의 마지막 목격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생태계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크세르세스파랑나비가 줄어들자 이들이 수분하는 토종 식물들과 토종 개미들도 함께 줄어들었다. 토종 개미의 감소는 식물의 감소로 연결되었다. 나비의 멸종은 서식지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나비의 멸종은 도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파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나비가 사라졌다는 것은 생태계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며 다른 토착종도 살기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보존에 관한 진정한 개념이 생기지 않았다. 당시 채집자들을 원망하는 일은 소용없다. 아직은 전 세계 주요 자연사박물관 서랍에 정말 아름다운 곤충인 크세르세스파랑나비 표본이 보존되어 있으니 다행이다. 지금도 아름다운 곤충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지는 그들의 그림자를 앞으로도 영원히 밟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고립된 섬 생태계의 붕괴
남대서양의 외딴 화산섬 세인트헬레나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말년을 보낸 유배지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해안에서 2000㎞ 이상 떨어진 이 고립된 전초기지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의 감옥이자 고립 속에서 진화한 독특한 동식물의 서식지 역할을 했다. 섬의 화산 지형과 험준한 지형, 다양한 미(微)기후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고유종에게 서식지를 제공했다.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Labidura herculeana)도 그 가운데 하나다. 길이가 최대 8.4㎝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 때문에 세인트헬레나헤라클레스집게벌레라고도 부른다. 다리는 검붉은 색이며 겉날개는 짧고 딱딱하다. 하늘을 나는 속날개는 없다. 고립된 섬에 살면서 섬 거대화의 영향으로 몸이 커지고 날개가 퇴화한 것이다.
집게벌레는 청소부다. 생태계 내에서 영양분을 재활용하여 토양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섬의 건조한 평원에 서식하며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은신처를 마련했다. 깊은 굴에 살며 비 오는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는 섬의 독특한 환경에 잘 적응했다. 문제는 그들이 좋아하는 바위를 사람들도 좋아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인트헬라나 섬에 건물을 짓기 위해 바위를 파괴했다.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의 서식지가 줄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쥐와 지네가 사람과 함께 섬으로 침입했다. 쥐는 집게벌레 애벌레를 잡아먹었다. 처음 보는 포식성 지네는 집게벌레 성체와 애벌레를 동시에 공격했다. 사람들은 뒤늦게 침입종을 통제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늦었다. 1967년 살아있는 개체가 마지막으로 관찰되었다. 2014년 IUCN 적색 목록에 멸종으로 기록되면서 공식적으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종이 되었다.
섬 생태계는 일반적으로 취약하다. 매우 특정한 서식지 요건을 갖추고 고립되어 진화하는 경우가 많다. 서식지가 파괴되거나 외래종이 침범하면 고유 생물의 멸종 위험이 높아진다.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의 멸종은 대표적인 사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운명처럼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의 운명도 인간에 의해 결정된 셈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은 사람의 눈에 띄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찾은 희망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태즈만 해에는 로드하우라는 초승달 모양의 작은 섬이 있다. 700만년 전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이 외딴섬에는 울창한 숲, 우뚝 솟은 절벽, 깨끗한 해변이 있으며 아열대 우림에서 해안 사구까지 다양한 지형이 있다.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많아 다양한 희귀종과 고유종이 번성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덕분에 많은 생물종이 고립된 채 진화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식물이 많이 탄생했다.
나무가재라고도 불리는 로드하우대벌레(Dryococelus australis)도 그 가운데 하나다. 단일종 속 생물이다. 속 안에 한 개의 종만 있다는 뜻이다. 성충은 20㎝까지 자란다. 길쭉한 모양의 튼튼한 다리가 있다. 날개는 없다. 암컷과 수컷이 한 쌍을 이루며 나뭇가지에 달린 채 알을 낳는다. 부화하는 데 아홉 달이나 걸린다. 수컷이 없어도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체 수가 적을 때도 생존할 수 있다.
로드하우대벌레는 사람에게 인기였다. 식량감이 아니라 좋은 낚시 미끼였다. 그렇다고 해서 종의 생존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갯지렁이를 낚시 미끼로 사용한다고 해서 갯지렁이 멸종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과 같다. 그런데 1918년 보급선이 로드하우 섬에 좌초한 후 검은 쥐가 섬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불과 2년 뒤인 1920년 이후에는 로드하우대벌레를 볼 수 없었다.
2001년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프리델과 니컬러스 칼릴은 섬에 로드하우대벌레가 살 수 있는 충분한 초목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섬을 샅샅이 뒤졌다. 우연히 커다란 곤충 배설물을 발견했다. 곤충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은 해가 진 후에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마침내 24마리의 작은 개체군을 발견했다. 이 곤충은 이후 멜버른 동물원 등에서 수만마리로 번식되었다. 2023년 로드하우 섬 앞바다의 작은 섬인 블랙번에 곤충을 재도입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섬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로드하우 섬에도 로드하우대벌레를 재도입할 계획이다. 전제 조건은 검은 쥐를 소탕하는 것.
크세르세스파랑나비는 도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사라졌고,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는 외래종의 침입과 서식지의 변화로 인해 멸종되었다. 로드하우대벌레는 인간이 도입한 침략종으로 거의 사라질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복원 노력이 이어졌다. 인간의 활동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사라지게 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또한 우리가 지금이라도 멈추고 보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의 선택이 앞으로 곤충들이 사라질지, 아니면 함께 공존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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