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 시곗줄’ 분광기에 넣었다… 정품입니다

안상현 기자 2024. 11. 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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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성수동 명품 검수센터 가보니
지난 17일 서울 성수동 소재 번개장터 제2검수센터에서 하얀 가운을 걸친 전문 검수사들이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검수 의뢰가 온 명품의 진품 여부를 살피고 있다. 금속 성분 분석기와 소재 분석용 분광기 같은 장비로 가짜 명품을 걸러낸다. 아래 사진은 시계 전문 검수사가 중고 거래를 위해 검수 의뢰가 들어온 롤렉스 시계를 살피고 있는 모습./안상현 기자

서울 성수동에 있는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중고 명품 전문 검수 센터에 들어서자 연구소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 가운을 걸친 전문 검수사 8명은 실험용 플라스크를 만지듯 조심스레 시계·가방·의류 제품들을 살피고 있었다. 작은 현미경이 장착된 안경을 낀 한 검수사는 롤렉스의 명품 시계 ‘서브마리너 콤비’를 보고 있었다. 중고 가격만 1500만~1700만원에 이른다. 정품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품을 값싼 사제품으로 교체한 것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부품·기능 점검 후 박스 형태의 금속 성분 분석기에 시곗줄을 넣었다. 화면에 ‘Mo’라는 작은 글자가 떴다. 검수사는 “크롬 합금 소재이기 때문에 몰리브덴강(Mo)과 금(金) 성분이 추출돼야 하는데, 분석 결과를 보니 정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고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가짜 명품 거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브랜드 매장에서 구매하지 않다 보니 제품 보증을 받기 어렵고, 제조사가 주는 정품 인증서가 없어진 경우도 많다. 가짜 명품 거래가 늘면 중고 명품 거래 시장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플랫폼들이 전문가와 첨단 장비를 투입해 ‘가짜 명품’과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김재군 번개장터 검수팀장은 “가짜 명품도 워낙 정교하기 때문에 육안으로만 가려내기 어려워 전문 연구원들이 성분 분석용 분광기 장비까지 동원해 소재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제조사마저 속는 수퍼 페이크

가짜 명품은 이제 제조사마저 속일 정도로 정교하다. 지난해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 ‘오메가’가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자사 박물관 전시를 위해 2021년 세계 3대 경매사로 꼽히는 필립스 옥션에서 약 50억원에 낙찰받은 1958년형 시계 모델 ‘스피드마스터’가 뒤늦게 가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시계는 다른 오메가 시계 부품을 조합해 만든 것이었다.

과거에는 전문가들이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박음질 패턴이나 로고·각인 마감 처리, 소재 질감 등을 통해 쉽게 가품 감별이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은 전문가들도 육안이나 촉감으로 검수가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정밀 제조해주는 컴퓨터 수치 제어(CNC) 공작기계나 3차원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mm 단위로 정밀하게 가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한 명품 검수사는 “제품 설계도만 손에 넣으면, 사실상 명품 업체와 같은 공법으로 가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명품 브랜드의 하도급 업체였던 곳이 계약 종료 후 가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NFC·AI 기술 동원하는 명품 브랜드

정밀한 가품이 많아지면서 명품 브랜드 역시 이를 걸러내기 위해 각종 첨단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는 일부 제품에 제조 내역이 담긴 NFC(근거리 무선 통신) 칩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정품 인증을 하고 있다. 루이비통이나 버버리 같은 브랜드는 마크비전이나 엔트루피 같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과 손잡고 위조품 내지 위조품 판매자를 식별하는 AI 기술을 활용 중이다.

온라인 중고 명품 플랫폼 트렌비는 아예 중고 명품 검수를 전담하는 AI 모델 ‘마르스 AI’를 개발해 지난해 내놨다. 자회사인 한국정품감정센터에서 확보한 수십만 건의 감정 데이터를 학습시켜 만들었다. 중고 명품의 사진을 찍으면, AI가 크기와 박음질 상태 등 정품의 데이터와 정밀하게 비교해 가품을 가려내는 것이다. 한정판 거래를 주로 취급하는 플랫폼인 크림 역시 검수센터를 운영하며 육안 검수 외에도 컴퓨터단층촬영(CT) 엑스레이와 자외선 조명 등을 활용해 가품을 검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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