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공동성명에서 빠진 ‘북 비핵화’ 정부가 동의한 건가
한미 국방 장관이 30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내놓은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빠졌다. 대신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킨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SCM 성명에서 ‘비핵화’ 문구는 북핵이 고도화한 2016년 이후 매년 포함됐는데 9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31일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비핵화)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미국에선 ‘북 비핵화’ 표현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채택한 새 정강에서 ‘북 비핵화’ 표현이 자취를 감췄다. 지난 3월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한반도와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조치’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차이가 있다. 미국의 목표는 핵 비확산이다. 반면 한국의 지상 과제는 북 핵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근본 이익이 다른 것이다. 미국은 북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면 북한과 ‘핵군축’ 협상으로 전환하면서 한국의 핵 개발을 감시하게 될 것이다. 핵군축은 김정은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 안보에 재앙이다.
김정은은 31일 미국 타격이 가능한 ICBM을 시험 발사하고 “핵 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방정보본부는 “북이 7차 핵실험 준비도 마쳤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보유국 간의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이 반대급부로 핵 추진 잠수함과 ICBM 재진입 기술을 받아 전략 핵무기를 완성하면 미국은 북한과 핵 협상으로 상황 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런 미국은 언제든 ‘북 비핵화’ 문구를 뺄 수 있고 실제 북 비핵화 목표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입장은 다르다. 정부가 핵무장을 포기한 상태에서 어떤 경우에도 국제사회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 김정은이 ICBM·핵 추진 잠수함 등을 완성하면 미국이 뉴욕을 희생하면서 서울을 지키겠느냐는 물음은 더 커진다. 세계 모든 나라가 ‘북 비핵화’를 포기해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한미 공동성명에서 이 문구는 그런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남북 이벤트에 몰두하던 문재인 정부 때도 SCM 성명에서 ‘북 비핵화’ 문구가 유지됐다. 그게 윤석열 정부에서 없어졌다니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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