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이도 사는법]하니의 ‘직장 내 괴롭힘’과 국회의 ‘재판 개입’
걸그룹 뉴진스의 총괄 프로듀서인 민희진 어동 전 대표가 자신을 대표이사로 재선임해 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이 지난달 30일 법원에서 ‘각하’됐습니다. 각하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을 심리하지 않고 종결하는 결정입니다. 멤버 하니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눈물을 흘리며 ‘직장 내 괴롭힘’까지 호소했지만, 법원은 이와 관련해 제기된 가처분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입니다.
민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은 하이브가 지명한 어도어의 사내이사 3인이 이사회에서 민 전 대표를 다시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 찬성하도록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민 전 대표는 1일자로 3년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됐는데, 지난달 17일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습니다. 하지만 ‘이사’에 그치지 않고 다시 대표이사로 선임되도록 해달라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이사들에게 ‘특정 안건에 찬성하도록 지시하라’는 형태의 가처분은 매우 낯선 형태입니다. 민 전 대표 측이 이를 요구하는 근거는 하이브와 민 전 대표가 체결한 주주간 계약 조항에 있습니다. 이 조항은 ‘하이브는 민희진이 2021년 11월부터 5년간 대표이사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사회에서 하이브가 지명한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도어에 대해 민 전 대표는 17.8%, 하이브는 80%의 지분을 가진 주주로서, ‘대표이사 5년’ 임기를 보장한 만큼 하이브 선임 이사들에게 찬성표를 행사하도록 지시하라는 것입니다.
◇법원 “이사가 주주 지시 따를 의무 없어”
이에 대해 법원은 ‘신청의 이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이브가 이사들에게 ‘민희진 대표이사 찬성’을 지시하더라도, 이사들은 그대로 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법상 회사의 이사는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가 있기 때문에 주주인 하이브 지시를 그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생각해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가처분으로 이사들에게 ‘찬성의무’가 생기지 않으므로 소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법원은 또한 민 전 대표가 주장하는 권리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위 조항과 같이 주주가 이사에게 특정 행위를 해야 한다고 정한 조항을 ‘프로큐어(procure)조항’이라고 합니다. 법원은 이 조항이 상법상의 기본 원리에 반하기 때문에 그 효력에 논란이 있다고 했습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상법의 주요 원칙입니다. 주주는 회사를 지분비율로 소유하고 경영은 이사들의 몫입니다. 주주는 이사 선임·해임 등의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만 관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주가 이사에게 특정 행위를 명할 수 있게 하면 이런 원칙에 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조항이 유효한지 본 소송에서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가처분을 받아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실제 이런 소송이 받아들여진 전례도 찾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 연예인-소속사간 계약분쟁을 ‘직장갑질’로 국회에 세운 황당함
상법의 기본 원칙을 근거로 가처분을 각하한 법원의 논리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환노위원장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질문하겠다며 하니를 국회 참고인 명단에 포함시켜 증인으로 서게 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국회를 더 우습게 만든 셈입니다.
이날 팜하니가 증언한 내용은 하이브 소속 매니저에게 인사했다가 ‘무시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상 연예인을 근로자로 보기도 어렵고, 들었다는 말 자체로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법원에서 분쟁 중인 ‘사인간 계약’에 국회가 섣부르게 개입했다는 측면에서 저는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니가 주장하는 ‘직장 내 괴롭힘’과 민 전 대표가 요구하는 대표이사 재선임은 전혀 별개의 내용이 아닙니다. 앞서 뉴진스 멤버들을 시한을 정해 ‘민 전 대표를 대표이사로 되돌려놓으라’고 요구했고, 하니가 주장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민 전 대표가 복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괴롭힘 자체가 없었다”고 맞서는 하이브와 민 전 대표가 법정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쪽 당사자나 마찬가지인 뉴진스 멤버를 증인으로 세우는 것은 경솔할 뿐 아니라 일종의 재판 개입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평소 고성과 삿대질을 일삼던 의원들이 일부는 뉴진스 팬덤 ‘버니즈’ 스티커를 붙이고,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하니와 ‘인증샷’을 찍는 모습까지 보인 것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입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사상 최초의 ‘걸그룹 증인’까지 불렀던 일대 소동은 결과적으로 법적으로는 법원 문턱도 넘지 못하고 일단락됐습니다. 이런 소송의 당사자가 국회에서 눈물을 흘리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다른 사건에서는 가능할까요. 국회가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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