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왕진(往診)

이수영 2024. 11. 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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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환자를 찾아가 진료하는 왕진은 인술(仁術)의 상징이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왕진은 의학으로 건강을 챙기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요즘 강원 도내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던 왕진이 부활하고 있다.

강릉과 횡성 등 일부지역에서 왕진 버스가 운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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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환자를 찾아가 진료하는 왕진은 인술(仁術)의 상징이었다. 간호사와 함께 진료 가방을 들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집을 찾는 모습은 가끔 TV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 1970~1980년대엔 농촌지역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의료진은 환자들을 가족과 같이 생각했고, 벽지 마을도 마다 않고 고갯길을 넘기도 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왕진은 의학으로 건강을 챙기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직업인으로서 의사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때로 고마움의 표시로 고구마와 감자 등 농작물을 선물하지만, 의료진이 한사코 거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요즘 강원 도내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던 왕진이 부활하고 있다. 강릉과 횡성 등 일부지역에서 왕진 버스가 운영됐다. 강릉시는 올해 농협중앙회와 ‘농촌왕진버스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강릉원예농협은 종합자재센터에서 왕산면 주민을 대상으로 왕진버스를 운영했다. 같은 달 24일 북강릉농협 연곡 지점에서 주문진과 연곡면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NH농협 횡성군지부와 동횡성농협은 지난달 1일 갑천면에서 ‘농촌 왕진버스’의 시동을 걸었다. 복지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촌지역을 방문해 의료, 장수사진, 검안·돋보기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한방병원 의료봉사단 12명과 함께 침 시술, 물리치료 등의 진료활동도 펼쳐 호응을 얻었다.

왕진이 주민 건강에 큰 역할을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나가노현이 일본 최고의 건강·장수 지역으로 거듭난 비결 중 하나로 왕진 전통이 꼽힌다. 사쿠종합병원 의사 와카쓰키 도시카즈(1910~2006)는 농촌 지역에서 출장 진료를 했다. 그는 ‘치료는 예방을 못 이긴다’는 슬로건을 걸고 잠재 질병의 개념을 확립했다고 한다. 큰 병으로 커지기 전에 왕진을 통해 예방하는 과정은 치료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 여건은 앞날을 예견할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하다. 정부와 의료계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완강하게 대치한다. 종합병원 의료진들은 과로로 지쳐가고, 의료 시스템은 빈틈을 보인다. 타협과 대화를 거론하기조차 힘들만큼 분위기가 험하다. 그래도 믿고 싶다. 왕진 길을 떠나던 그 마음이 병원마다 살아 있기를…. 이수영 논설위원

#명경대 #농촌지역 #의료진 #왕진버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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