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겨울 나그네’의 계절이 오고 있다
각 곡에 대한 해석·표현·연주
세월 따라 느껴지는 감흥 달라
사랑·고통 아우르는 포용 느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시 꺼내서 듣는 음반들이 있다. 페터 슈라이어, 이언 보스트리지, 마티아스 괴르네, 벤자민 아플, 이 네 성악가의 ‘겨울 나그네’를 번갈아 듣는다. 같은 노래들이라 해도 테너의 맑고 섬세한 음색과 바리톤의 낮고 묵직한 음색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각 곡에 대한 해석과 감정의 표현이 성악가마다 다르기도 하고, 들을 때의 내 정서적 상태에 따라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이 다르다. ‘겨울 나그네’ 공연에서 성악가의 노래에 집중하느라 가사를 놓칠 때가 있고, 가사를 새롭게 음미할 때가 있고, 반주자의 연주가 더 인상적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빌헬름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런데 ‘겨울 나그네’는 나그네의 고독하고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마지막 노래인 ‘거리의 악사’에서 나그네는 “마을 저편에 손풍금을 연주하는 노인”을 향해 “내 노래에 맞추어 당신의 손풍금으로 반주를 해줄 순 없는지?”라며 동행을 청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거리의 악사에게 나그네는 동병상련을 느낀 것이다.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대는 “비좁은 숯장이의 움막에서 휴식처를 얻었네”(‘휴식’)나 “마을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는 까마귀”(‘까마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겨울 나그네’의 첫 노래 ‘안녕히’는 “나는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네”로 시작된다. 나그네는 연인과 이별하고 상실의 고통을 안고 떠도는 낭만적 방랑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사회에서 배제된 이방인이나 주변부로 밀려난 가난하고 힘없는 존재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겨울 나그네’가 지닌 사회적 차원이나 민중적 소박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겨울 나그네’ 공연만 백 번도 넘게 했다는 이언 보스트리지가 쓴 책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서문 앞에는 슈베르트의 산문 ‘나의 꿈’의 한 대목이 인용되어 있다.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여러 해 동안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이 글을 읽으니 ‘겨울 나그네’가 주는 감동이 연인뿐 아니라 자신을 멸시한 사람들까지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알겠다. 그 사랑과 고통의 변주곡인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이듬해 슈베르트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차디찬 여인숙”(‘여인숙’)의 투숙객이 되었다. 11월이었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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