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불평불만의 가격
불만 터뜨릴 권리를 돈 주고 사야 한다면 한국에선 얼마에 거래될까. 얼마 전 글로벌 식품 기업 직원으로부터 유독 한국인이 불만 제기를 적극적으로 한다는 얘길 들었다. 소비자 불만 접수 통계를 냈더니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70%로 1위를 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나 유럽과 같은 다른 지역 통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 비율이었다. ‘한국은 컴플레인의 나라냐’는 그 직원의 물음에 답은 못했다. 대신 ‘이렇게 불만 표시를 위해 체력과 시간과 감정을 쓰는데, 돈인들 못 쓸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불만권’을 원할 테니, 만약 가격이 매겨진다면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려나.
식품 기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해외 이커머스 기업들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고객센터 강화부터 한다. 가격 경쟁력이나 품질 못지않게 중요한 게 고객 불만 관리라고 보는 것이다. 어떤 제품이든 무조건 환불을 보장하거나, 고객센터 직원을 대규모로 추가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5년 전 구매했던 지갑을 환불해달라는 고객에게 ‘피하는 게 상책’이란 생각으로 환불을 해줬다는 백화점 직원 이야기도 들었다.
컴플레인을 하려면 문제의식에 적극적인 행동력까지 필요하다. 같은 컴플레인이라도 문제의식이 뒤틀려 있거나, 행동력이 과하면 ‘악성’이 된다. 듣는 상대가 기분 상할 말을 하면 죄책감이 드는 게 당연한데, 컴플레인을 할 때는 면죄부를 돈 주고 산 기분이 든다. ‘내가 돈 주고 산 제품인데 이 정도 문제제기는 할 수 있지’ ‘세금을 이만큼 냈는데 더 나은 처우를 받아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불만을 제기하는 대상이 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이라면 ‘민원’이 된다. 작년 공공기관에 접수된 민원은 총 1459만건. 국민 3명 중 1명은 민원을 제기한 셈이다. 민원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작년 민원 키워드를 분석했더니 10대는 게임과 학교, 20대는 병역, 30대~40대는 교통과 아파트, 50~60대는 부동산과 지역 기피 시설과 관련한 민원이 많았다.
가끔이지만 ‘불만쟁이’들의 덕을 보는 일도 있다. 불평과 불만 제기가 늘면, 듣는 쪽도 감각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정부는 ‘실시간 민원 신호등’까지 운영한다. 분야별로 일주일 전 대비 10% 이상 민원이 늘어나면 빨간불이 켜진다. 민원 신호등은 국민권익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해외 IT 기업서 근무한 친구는 “서울 한적한 동네 골목에 교통 신호등이 고장 난 걸 봤는데, 몇 분 뒤에 경찰이 와서 고치고 있더라”며 “다른 나라라면 며칠은 걸렸을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정당한 지적인지, 과잉 불만인지 불만을 제기하는 당사자는 알기 어렵다. 고객센터에 전화하고, 항의 메일을 보내며 체력과 시간 비용을 추가 지불하면 더 큰 분노가 쌓인다. 그럴 땐 불만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 서보면 안다. 고객센터에 전화할 때마다 ‘상담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길 필요가 있다. 상식 너머의 불만을 터뜨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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