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83] 변변찮을 ‘태(駄)’
일본어에 ‘다메(駄目)’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행위 등을 금지하거나 불허하는 ‘안 돼!’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다메는 본래 바둑의 공배(空排)를 말한다. 공배란 돌을 놓아봐야 어느 쪽 집에도 속하지 않아 승패에 영향이 없는 무의미한 공간을 말한다. 이러한 원뜻에서 ‘쓸모없는’ ‘소용(가망)없는’ ‘해서는 안 되는’ 등의 쓰임새가 파생되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한자가 ‘駄’ 자다. 한국에서는 ‘馱’로 쓰며, ‘짐 타’ 또는 ‘(짐) 실을 태’라는 훈과 음으로 풀이된다. ‘馬+太’로 구성된 駄는 본래 짐을 나르는 말[馬]을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값진 재산 중 하나인 말은 주로 지배 계층이 승마나 만마(輓馬·마차를 끄는 말)용으로 사용하였고, 노쇠하거나 하자가 있을 경우에나 짐을 나르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일본에서는 짐 나르는 말이 사람 태우는 말보다 하등하다는 인식에서 駄에 조악하다거나 볼품없다는 식의 의미가 첨부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미 12세기 문헌에 그러한 용례가 보이는 일본의 독자적인 의미 변천으로, 한국이나 중국에는 馱에 그러한 뜻이 없다.
일본어에는 부정적 의미로 駄가 사용된 단어가 많다. ‘다사쿠(駄作·수준 낮은 작품)’ ‘다가시(駄菓子·저질 과자)’ ‘다분(駄文·형편없는 글)’ ‘다켄(駄犬·잡종견)’ ‘다모노(駄物·값어치 없는 물건)’ ‘다벤(駄弁·쓸데없는 말)’ 등은 말머리에 駄를 붙여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조어한 것이다. 접두어처럼 쓰이는 것 외에 ‘무다(無駄·낭비, 헛짓)’처럼 말꼬리에 오는 경우도 있다.
이 중 ‘다사쿠’는 ‘어떤 조각가는 비상한 신품을 만들며, 어떤 조각가는 졸렬한 태작을 만든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에서와 같이 한국어사전에 ‘태작’으로 등재되어 한국어화하였다. 변변찮은 대상에 駄를 붙이는 조어법의 원조는 일본이지만, 기왕 한국어에 활용한다면 ‘태정치’ ‘태국회’ ‘태통령’ 등의 말부터 만들어 쓰고 싶을 만큼 작금의 정치판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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