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책임질 삼성 부사장 360여 명…중대재해로 이재용 처벌 못해"
삼성전자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현행 법 체계로는 최고 책임자인 이재용 회장을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사업장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진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넓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노회찬비전포럼과 정의정책연구소는 31일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산업재해 특성과 중대재해처벌법 개혁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5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노동자 두 명이 방사선에 피폭된 산재사고와 관련해 "해당 CSO(윤태영 산성전자 부사장)이 이재용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본인이 최종 책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 2조 9항에서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혹은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CSO가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이재용 회장을 구하기 위해 부사장인 본인이 (안전보건 업무를) 다 했고 회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삼성에는 360여 명의 부사장이 있다"며 "산재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부사장들을 내세워 회장이나 대표이사는 책임이 없다고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손 위원장은 삼성전자에서 여전히 산재 은폐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먼저 삼성전자가 기흥공장 방사선 피폭피해 노동자 2명의 화상을 '부상'이 아닌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동일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 3명 이상 혹은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이 발생한 경우 등에 적용된다.
이어 "얼마 전 삼성전자에서 또 다른 화학 사고가 발생했다. 재해자의 피부에 질산이 튀었는데 (사측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응축수 화상이라고 돼 있다"며 "화학 화상을 응축수 화상으로 바꾸면 뜨거운 물에 데인 수준으로 오해할 수 있다. 삼성전자에서 산재 은폐를 시도하는 경우가 아직 많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산업안전 강화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손익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동대표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필요한 변화로 △검거율 높이기, △양형절차 개선, △형벌 종류 추가 등을 꼽았다.
손 변호사는 중대재해 양형기준과 관련해 "판사가 형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위원회의 심의 또는 피해자의 진술을 청취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으려 시민사회가 노력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교통사고로 죽는 것과 중대재해로 죽는 것을 다르지 않게 보는 일부 판사의 시각을 교정하려면 이런 절차가 담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추가할 수 있는 형벌의 종류로는 "영업 허가 취소, 5년 이내 영업정지, 5년 이내 이행관찰, 무기 또는 1년 이상 공공입찰제한" 등을 들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비판하는 일부 전문가들이 기업이 (안전관리 증명 관련) 허위 서류를 만드는 일을 문제 삼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부와 산하 기관들이 행정편의적인 안전관리 증명 시스템을 만들어놨다"고 비판하며, 이를 바꾸기 위한 "노동부와 그 집행기구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류현철 재단법인 일과건강환경센터 이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견인해야 한다"며 특히 "사업주와 고용주의 포괄적 안전보건조치 위반을 처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법리를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는다"며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공개해야 "산재 예방과 연구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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