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무기여 농촌으로 오라
텔레비전에 소식이 들려오면 눈과 귀가 저절로 쏠리는 고장이 있다. 경북 상주시, 그중에서도 외서면이다. 외서면 봉강마을은 농활을 갔던 곳으로 혈연과 학연 아닌 아름다운 ‘지연’으로 남았다. 상주에서도 골짜기라 할 수 있는 외서, 내서, 은척, 화서면 일대는 황금 들판에 붉은 감나무가 어우러져 흡사 이발소 그림 같은 풍경을 지녔다. 하지만 요즘 이 마을들은 대구 50사단 군부대 이전 문제로 시끄럽다. 시내와도 떨어져 있고 전형적인 농업지대인 이 마을들은 상주에서도 땅값이 가장 싸고 개발 가능성도 없어 청정농업지대로 남았다. 그 어렵다는 유기농 포도농사를 비롯한 친환경농업을 꿋꿋이 이어가며 로컬푸드 매장에 농산물을 내는 농민들도 많다. 친환경농업에 뜻을 둔 이들의 배움터인 친환경농업학교도 이곳 외서면에 들어서 있어 귀농귀촌이 이뤄지는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들이다.
2019년 상주시 인구 10만명 선이 무너졌을 때 공무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상주(喪主)’가 된 표정으로 일을 해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인구 유치에 모든 지자체가 사활을 건다. 이에 관공서, 병원, 대학교(가급적 의대가 있는), 과학고, 선수촌, 무엇보다 대기업을 끌어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알짜배기들은 너무 외진 곳은 비껴가기 마련. 하여 마을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화장장 유치에도 나선다. 이마저도 안 하면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기시감 때문이다. 군부대는 환경오염이나 소음, 전쟁 나면 폭격을 먼저 맞을지 모른다는 안보 불안과 개발제한까지 겹쳐 오래도록 기피시설이었으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군부대가 들어오면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준다는 조건도 붙지만 먹성 좋은 장정들이 오고 가면 ‘군세권’이 생겨 지역이 활성화될 것이라 여겨서다. 여기에 군인 아파트라도 들어오면 인구 유입도 가능해지리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구에 남아 있는 군부대 이전 계획에 칠곡군, 군위군, 의성군, 영천시, 상주시가 군부대 유치에 발 벗고 나선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군부대 이전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일촉즉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무기’의 이전도 포함된다. 소총과 같은 개인화기는 기본이고 대포와 같은 화력이 센 공용화기도 들어온다. 당연히 군대는 훈련을 하는 곳이니 그만큼 넓은 폭격장이 필요하고 엄청난 소음과 위험도 함께 따라온다.
군부대와 소총 사격장 정도만 받아 군세권을 만들어 보려 했건만, 국방부가 두어 달 전, 기습적으로 공용화기 훈련장까지 함께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에 칠곡군이 반발하며 유치신청을 철회했으나 나머지 지역은 폭격장 물색에 나섰다. 300만평에 달하는 폭격장이 들어서려면 농촌 중에서도 외진 마을의 농지와 산지가 제격이다. 땅값도 싸고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하여 고령의 면민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신 농사짓고 살던 곳이 폭격장 후보지가 되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통지서를 날리고는 끝이다. 상주시는 70여년간 낙동공군사격장으로 고통받아왔고 상주시의 오랜 숙원사업이 사격장폐쇄였다. 하여 공군사격장폐쇄를 외치며 마이크를 잡고 포효하던 강영석 도의원이 지금 상주시장이다. 그랬던 강 시장이 이제는 “무기여 들어오라!”를 외치며 상주시 발전을 위해 면민들에게 희생해 달라는 중이다.
서울 송파구의 특전사, 전북 전주시의 35사단, 대구 수성구의 제2작전사령부 이전은 도시의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노른자위를 내주고 흰자위를 찾아온 군부대들은 늙고 힘없는 농촌마을을 헤집고 들어온다. 읍내엔 카페와 치킨점이 늘어도 치킨 배달조차 안 되는 면단위 자연부락들이 볼모로 잡힌다. 농지와 농촌 가옥은 흰자위는커녕 껍데기조차 아니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도농차별이자 농촌 내 읍면차별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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