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단해서, 꿈을 접는 일은 없었으면”[제32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야근을 하고 집으로 갈 때면 꿈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던 건 아직 어려서라고 믿었습니다.”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인 송문영씨는 수상 소감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영화 촬영감독이라는 꿈을 좇으며 여러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시들을 썼다고 했다. 당시 가장 직급이 낮았던 그는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마지막에 퇴근했다. “살아온 날이 아득한데 살아갈 날도 아득했던 밤”이라는 그의 말처럼 육체적인 피로감과 정신적인 부담감으로 “꿈에 대한 열정마저 버거울 정도로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송씨는 “매일 지하철 첫차와 막차를 타며 살았다”며 “새벽 공기가 스며서였던 건지 아니면 지하철 안의 고요함 덕분이었는지 특히 이 무렵에 많은 시를 쓴 것 같고 쓰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쓴 시 중의 하나가 “퇴근을 하고 밥을 먹습니다/ 이른 퇴근이지만 늦은 저녁입니다/ 밤하늘을 보니 또 무언가/ 생략되는 것 같습니다”로 시작되는 수상작 ‘노을이 아름다웠다고 자정에 알았다’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를 두고 “일상이 노동에 스며 있음을 포착할 줄 아는 시인의 감각이 돋보인다”며 “하루가 마무리되어야 하는 시간을 빼앗긴 채 노을 보는 것마저 생략하고 늦은 밤까지 일을 연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이 제목에서부터 응축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그의 시들에는 고단하고 불안정하게 살아가는 청년 노동자의 삶이 녹아 있다. “집이 좁아/ 가로등 빛이 구석까지 들면/ 숨을 곳이 없어 움츠렸던/ 빼앗긴 외로움”으로 시작하는 시 ‘남서향 집’은 처음 서울로 홀로 이사와 살았던 그의 경험이 담겼다. 송씨는 “처음 상경해 얻은 집이 보증금 100만원에 월 25만원인 3층짜리 건물의 옥탑방이었다. 좁은 골목이 길고 복잡하게 얽혀 있던 동네라 가로등이 꽤 많았다”며 “그게 사는 데 지장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로 고단한 날, 술 한잔 먹고 맘 놓고 울고 싶었던 날, 집 안에 모든 전등을 꺼도 나를 숨길 수 없다는 건 조금 슬펐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이기도 했다. 송씨는 “불안하고 우울하고 그래서 두려울 때 그래도 내가 이겨내고 한 발짝 더 내디뎠다고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는 게 시였다”며 “덕분에 정말로 많은 시를 쓸 수 있었지만 대부분 하소연을 하는 내용이라 최근에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은 제주에 머문다. 낮에는 어린이집 차량 기사로, 밤에는 심야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시 ‘노을이 아름다웠다고 자정에 알았다’에서는 “그만둡니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잡념이 끊이지 않아서 다시 시집을 듭니다/ 읽히지 않아서 쓰려다가 그만둡니다/ 내일은 일찍 퇴근했으면 하다가 그만둡니다/ 그만두고 싶은 건 그만둘 수 없어서/ 노을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둡니다.”
송씨는 언제부턴가 ‘그냥 하지 말자’라는 식으로 많은 것들을 시작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 시를 쓰게 됐다고 전했다. 무언가를 더 해보기에는 “이미 충분히 고단한 삶”은 많은 것들을 생략시켰다. 그는 “그리고 그렇게 고단해진 이유는 정작 정말로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만두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것은 그만둘 때 분명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겁이 난다고 해서 그 결정을 미루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서울살이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의 이전을 넘어 ‘영화인’이라는 그의 꿈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말했다. “솔직히 그 결정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특히 틈이 나는 대로 해안도로를 산책하게 된 지금의 삶은 정말로 제게 큰 축복입니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 속에서 언젠가 또 다른 꿈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것’ 그런 걸 하나 갖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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