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다치지 않아서…나는 다행이었다”[제32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데모 아니면 노가다.”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자 양성민씨는 수상소감에서 자신의 노동 이력을 두고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노동상담소 등 노동인권 관련 단체에서 10여년간 근무했고 조선소, 건설 및 제조업 등 여러 형태의 노동 현장에서도 10년 근무했다.
배관기능사, 용접기능사, 특수용접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직업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번 문학상 공모에서도 조선소 물량팀에서 배관공으로 일했던 기록인 ‘꿈꾸는 배관공’ ‘백야’ 외에 CNC 오퍼레이터에 대해 다룬 ‘버튼맨 그리고 단순노동’, 건설노동 현장에 대해 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공원묘지 관리인으로 일했던 경험을 담은 ‘경계에서’ 등을 함께 응모했다. 양씨는 인터뷰에서 “특별히 일부러 회사를 옮겨 다닌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여러 일을 하게 됐다. 불평불만이 많고 성격이 모가 나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글을 두고 “일상에서 에피소드를 포착해내는 시선이 매우 탁월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노동현장과 노동을 서열화하는 한국사회의 구조 등을 생생하고 예리하게 그려낸다.
‘백야’에서는 늘 기한에 쫓기며 안전기준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해야 하는 조선소의 아찔한 상황들이 그려져 있다. 예컨대 배관공인 그에게 용접을 맡기는가 하면, 용접을 하는 그 옆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페인트칠을 하는 식이다. “내가 옆에서 불꽃을 사방에 튀기고 있는데, 곁에서 페인트와 시너를 섞어 칠을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뭔가. 내일 시험 운전을 준비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박 방화를 준비하는 것인가… 이게 뭐냔 말이다. 세계 제일 조선 강국이라더니.”
양씨는 숱한 산재사고에도 여전히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조선소 현장에 대해 말하며 “하청 시스템이 있는 한 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생산량 압박 속에서 안전은 형식적인 조건이 될 수밖에 없고, 그나마 안전을 관리 감독해야 원청의 안전 감독도 휴일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지난여름 코로나에 걸린 채로 조선소에서 일해야 했던 상황을 돌이키며 “그래도 저는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바로 이웃에 있는 선박에서는 61세의 노동자가 의식을 잃고 엔진실에 혼자 누워 있다가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 합니다. 건너편 조선소에서는 한 노동자가 현장 화장실에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무더위에 지친 노동자들이 사라져가는 의식을 부여잡고 한 명은 엔진룸 그늘에서, 한 명은 화장실에 걸터앉아 쉬어보려다가 끝내 의식을 잃은 것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는 이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개탄했다.
‘버튼맨 그리고 단순노동’에서는 단순노동을 천대하는 시선을 꼬집으며 한국사회에 내재한 강고한 서열주의를 비판한다.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은 편안함이나 친근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낮은 계급과 열등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사회에선 직업 자체도 서열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서열에 따른 차별적 대우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전태일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이제 작가가 되는 것이냐’라는 주변의 축하가 고마우면서도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의례적 축하겠지만 그 안에는 “한국이라는 철저한 신분 계급 사회에서 문학상이라는 과거 시험을 통과해 미약하나마 작가라는 신분 상승을 이뤘다”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 경향이 담겨 있다는 생각 때문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바로 그 과정이 시이자 서사이며 사회 고발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학상을 통해 인정받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양씨는 “한 사회의 모순과 사회불평등을 판단하는 데에도 대단한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직관의 힘으로, 시대적 감수성으로 그건 가능하다고 본다. 청년 전태일도 그런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생활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돈해 보며, 자신의 글들을 엮어 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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