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2·기생수' 제작사에 "엔딩크레딧 표기" 소송...스태프 최초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기생수' 제작사 스태프 처우 소송전 반년째
"제작실장인데 일용 제작 지원 26명 중 한 명으로 오기"
"일방 주장,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크레딧, 콘텐츠업계 '경력증명서'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기생수 : 더 그레이'(기생수)가 첫 업로드된 지난 4월5일, 작품 제작에 참여한 A씨는 완성된 작품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A씨는 기생수에서 제작실장을 맡았는데, 그의 이름이 일용직 제작지원 26명 가운데 일원으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제작실장'엔 제작부서 회계팀 직원이었던 C씨 이름이 올랐다고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스태프가 제작사를 상대로 '크레딧 명기'를 요구하는 국내 첫 법정 다툼이 진행 중이다. A씨는 지난 4월26일 '기생수' 제작사 클라이맥스스튜디오가 엔딩크레딧에 자신의 역할을 오기한 조치를 바로잡아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6개월째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7월엔 본안 소송도 제기했다.
방송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과 A씨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2년 2월 클라이맥스스튜디오와 제작실장 업무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제작실장은 제작PD 바로 밑에서 작품 제작 전반을 준비하고 조율, 진행하는 실무 총괄 스태프다. 촬영을 준비하고 촬영과 조명, 미술, 의상, 분장 등 파트별로 스태프의 일정 관리와 예산 운영, 금액 조율, 계약 진행 등을 맡는다. 15년차 제작 스태프로 일한 A씨는 17개의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에서 제작부장과 제작실장을 맡았다.
A씨는 “클라이맥스스튜디오가 어떤 협의도 없이 크레딧을 의도적으로 오기해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A씨가 제시한 계약서는 “제작사는 본 작품에 '스태프'의 역할을 명시한 크레딧을 명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A씨는 '크레딧 오기' 배경에 엔딩크레딧 담당자이자 직속 상사였던 제작PD와 갈등이 있다고 추정한다. A씨는 '기생수 : 더 그레이' 제작 과정에 1년 가까이 작품 제작에 참여했으나 B 제작PD에 의해 감정적인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됐고, 갈등을 겪다 촬영 종반부 하차를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A씨의 계약기간은 2022년 2월부터 2023년 1월까지였다. A씨는 계약만료를 두 달 남기고 2022년 11월께 B 제작PD로부터 '업무스타일'을 이유로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하차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A씨는 통화에서 “(B 제작PD로부터) '내가 원하는 만큼 일을 잘 하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A씨는 “부당한 요구라 생각했고 하차 이유에 정확한 설명도 받지 못했다. 인수인계를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오늘 당장 나가라는 말을 듣고 그 길로 나와야 했다”고 했다. 그는 하차 요구에 응한 이유를 두고 “존경하는 감독님이기도 하고, 프로젝트가 잘 끝났으면 하는 마음에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A씨와 클라이맥스스튜디오는 계약만료 시점을 12월20일로 한 달여 앞당겨 계약변경 합의서를 다시 썼다. 크레딧을 포함한 스태프 권리 사항 부분은 기존 계약서를 따르기로 했다. A씨는 “이듬해 4월 크레딧 오기를 확인한 뒤 제작사와 B PD에게 연락해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했으나 끝내 거절 당했다”고 했다.
제작사는 크레딧에서 A씨를 제작실장으로 인정하지 않은 근거로 계약서상 단서 조항을 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측이 맺은 계약서의 '크레딧 명기 의무' 조항이 '스태프가 용역의 제공을 완료하지 못한 경우(불완전 이행을 포함한다)는 예외'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다. A씨는 이에 대해 “정상적으로 계약변경 합의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용역 제공이라 볼 수 없으며, 용역을 제공하지 않은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제작사 측이 크레딧을 임의 변경한 것”이라고 했다.
A씨가 크레딧을 두고 법원까지 찾은 이유는 뭘까.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크레딧은 스태프의 '경력증명서'로 통한다. 크레딧(credit)이란 영화나 드라마 끝무렵이나 첫머리에 작품에 관계한 스태프와 직원의 이름과 역할을 나열한 리스트다. 스태프의 작품 참여를 증명하는 방법은 엔딩크레딧상 역할과 성명을 표기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영화 스태프 구인공고도 지원조건에서 해당 직분의 '크레딧 보유'를 자격 기준으로 삼는다.
엔딩크레딧은 보도자료에서 “클라이맥스스튜디오와 넷플릭스가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크레딧 명기와 관련해 사과하고 오기를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한다”며 “제작사가 가진 힘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불이익한 처우를 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밝혔다.
엔딩크레딧은 “A씨는 소송을 제기한 뒤 작품 촬영과 관련해 사실무근인 허위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서 차기작 참여 기회를 잃는 등 2차 피해도 겪고 있다”며 “반면 해당 제작 PD는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에 참여하며 업계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엔딩크레딧은 제작투자와 유통 꼭짓점에 있는 넷플릭스도 책임지고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K-콘텐츠가 OTT의 성장과 더불어 더욱 주목받지만,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은 여전히 평가절하되고 있다”며 “넷플릭스 강 건너 불구경할 게 아니라, 자사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점에서 보다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클라이맥스스튜디오는 '지옥2'의 공동제작도 맡고 있는데 전작 문제에 해결 의지 없이 새로운 작품으로 주목받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제작사는 31일 관련 입장을 묻는 질의에 B 제작PD를 통해 밝히겠다고 전했다. B 제작PD는 통화와 문자메시지로 “일방적 보도자료 내용과 입장 차가 많이 큰 상황”이라며 “우리 입장을 소명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고 결정이 지연돼 기다리고 있다. 법원 판단 전에 답변하기 조심스러우며 명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B 제작PD가 크레딧 담당자로 의도적으로 오기했으며 계약 기간엔 A씨를 부당하게 업무 배제했다는 주장 등에도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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