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의 참패는 쓸모가 있다 [특파원 칼럼]

홍석재 기자 2024. 10. 3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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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출근길 전철역 앞을 달궜던 야당 후보들의 목소리는 31일 사라져 있었다.

일본에선 나흘 전 중의원 선거가 막을 내렸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게 9월27일이다.

선거 이전 중의원 247석(전체 465석)을 차지했던 자민당이 191석, 32석이던 공명당은 24석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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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8일 일본 중의원 선거 다음날 기자회견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석재 | 도쿄 특파원

“세금 도둑 자민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돼야 합니다!”

한동안 출근길 전철역 앞을 달궜던 야당 후보들의 목소리는 31일 사라져 있었다. 일본에선 나흘 전 중의원 선거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무대는 불이 더 환하게 켜진 형국이 되고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게 9월27일이다. 1차 투표에서 27표 차로 뒤지다가, 첫 결선 마운드에 오른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 담당상을 상대로 ‘9회 말 투아웃 역전 홈런’ 같은 역전극을 펼쳤다. 나흘 뒤 10월1일 총리 선출, 9일 중의원 해산, 15일 선거 고시와 공식 선거전 돌입, 이후 12일간 선거 운동을 거쳐 지난 27일 각 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성적표를 받았다. 이 모든 게 불과 한달 사이 일어났다.

결과는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참패였다. 선거 이전 중의원 247석(전체 465석)을 차지했던 자민당이 191석, 32석이던 공명당은 24석으로 줄었다. 자민당 단독은 물론 연립여당으로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정권 교체가 최대의 정치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 148석으로 자민당을 턱밑에서 뒤쫓게 됐다.

국회의원 투표로 총리를 뽑는 일본에선 특정 정당 단독 혹은 연합정당이 국회 절반을 넘기면 국회의원 가운데 원하는 사람을 총리로 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정 최고 운영자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의원 선거가 우리의 대통령 선거와 비슷한 구실을 한다. 기계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야당 가운데 일본유신회(38석)와 국민민주당(28석)이 자민당에 등을 지고 몇몇 소수정당이 입헌민주당 편을 들면 2009년 이후 다시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 벌써 30년이나 지난 얘기여도 비슷한 선례가 있다. ‘8개월 천하’에 그쳤지만, 1993년 8개 군소야당이 연합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자민당을 야당 자리로 몰아낸 적이 있다. 이번 선거 과정에 이시바 총리가 “민주당 정권은 악몽”이라고 했던 말이 비유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현실에선 일단 자민당이 국민민주당과 우선 협상 카드를 쥐었다. 입헌민주당은 일본유신회에 구애하고 있다.

1955년 창당한 자민당이 69년 동안 여당 자리를 뺏긴 게 단 두차례, 기간으로 4년 남짓에 불과하다. 긴 권력의 세월만큼 떨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당 안에서 “정책 수행이 지옥길로 들어간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1당 장기 집권 체제에 금이 가는 게 보통의 시민들에겐 긍정적인 면이 꽤 많아 보인다. 우선 정치자금을 뒤로 챙겼던 자민당 의원 상당수가 공천 배제나 낙선으로 철퇴를 맞았다. ‘세금 도둑’으로 불렸던 이들이다. 이시바 총리가 내세웠던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나 ‘핵 공유’처럼 현실성 없는 주장은 쏙 들어갔다. 대신 국민민주당의 ‘손에 쥐는 임금 확대’ 같은 정책을 여당 경제대책과 추가경정예산안에 포함하려 하고 있다. 한때 무소불위였던 자민당이 여당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국민민주당 눈치를 자주 봐야 하는 상황이다. 힘겨워하는 일부 정치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정치가 바쁘게 돌아가는 건 쓸모가 있다.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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