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잊혀진 여성국극
박녹주는 딸을 나라 제일 명창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열두 살 때부터 소리를 시작했다. 명창 박기홍에게 배울 때는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소리를 하느라 목에서 피가 났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소녀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다.
박녹주는 1948년 임춘앵·김소희 등 당대 여성 명창들과 함께 최초의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동호회’를 창설한다. 그는 훗날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울에는 국극사, 조선창극단 등의 예술단체가 있었지만 모든 운영이 남성 위주였고, 여성들은 꽤 푸대접받는 편이었다. 이에 항시 불만을 품고 있다가 내가 주종이 돼서 순전한 여성 단체를 만든 것이다.”
여성국극에서는 여성 소리꾼이 남성 배역까지 소화했고, 기존의 창극과 달리 소리뿐 아니라 춤과 연기 등의 비중이 컸다. 이후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판소리계 판도가 바뀌었다. 호동왕자나 이몽룡 역을 맡은 남역 배우에게는 팬레터가 쏟아졌다. 팬들의 요청에 신랑 분장을 하고 가상 결혼사진까지 찍어줬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국극은 짧은 전성기를 뒤로한 채 195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을 걷는다. 영화·라디오가 등장한 시대적 영향도 받았지만, 결정적 원인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였다. 여성국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에서 한 배우는 “여성국극의 안무와 반주 등은 모두 최일류였는데도, 연출가들이 예전에 여성국극 했다는 얘기를 숨기더라”고 했다. 남성 비평가 중심으로, ‘여성국극은 기형적인 통속문화’라는 이미지가 형성된 여파였다. 여성국극은 정부의 모든 전통예술 지원 정책에서 배제돼 쇠락했고, 박녹주는 셋방을 전전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잊힌 여성국극을 다시 소환한 것은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해가는 드라마 <정년이>이다. 드라마 속에서 재현된 화려한 여성국극 무대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 영향인지 여성국극 1세대 조영숙 명인 제자들이 세운 여성국극제작소의 <화인뎐>이 최근 성황리에 초연을 마쳤다고 한다. 현실 속 ‘정년이’들이 새로운 여성국극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해본다.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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