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해줘라” 다음날 윤 대통령 “공정” 취임사···국정 신뢰 훼손

문광호·박하얀 기자 2024. 10. 3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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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인 2022년 5월10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경축연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2022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

윤석열 대통령이 이같은 취임 연설을 하기 하루 전 명태균씨와 통화하며 “공관위에 ‘내가 그거는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31일 드러났다. 핵심 가치로 내세운 ‘공정과 상식’을 훼손했다는 비판과 함께 국정 리더십이 중대 위기에 놓이게 됐다. 명씨와 김건희 여사 중심의 공천개입 의혹이 윤 대통령을 직접 겨누게 되면서 정권 차원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31일 공개한 녹음에서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9일 명태균씨에게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통화가 이뤄진 직후인 2022년 5월10일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을 경남 창원 의창 국회의원 후보로 전략공천했다.

명씨와 김건희 여사의 관계에 집중됐던 논란은 윤 대통령으로 확대됐다. ‘간접 정황’ ‘비선 간 의혹’을 넘어 윤 대통령 본인의 육성이 나오면서 직접 해명을 요구받는 상황이 됐다. 윤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 큰 책임이 따르는 공직자라는 점에서 정치권에 미칠 영향의 파급력도 차원이 다르다.

이번 사안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자 국정기조와 직결돼있다. 전문가들은 정권의 성립 기반을 흔든다는 점에서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천개입 혐의로 기소했고,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을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 입문 때부터 공정과 상식의 복원을 내세웠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린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며 “정권에 강력한 일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정치학과 교수도 “법리적인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대통령 신뢰도 등 정치적으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그간 해명이 거짓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정 동력도 훼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대선 경선 막바지 이후 대통령은 명 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밝혔는데 이날 통화가 공개되면서 거짓 해명 논란이 확산했다. 보수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전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나 “대통령이 국민 신뢰도가 낮으니, 국정 최고 책임자가 저러면 무슨 정책을 펴도 효과가 안 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향후 정국은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여당과 윤석열 정부 압박에 박차를 가하려는 야당의 움직임이 맞물려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정관계의 균형추가 여당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조경태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정국을 용산이 아니라 우리 당에서 주도해야 된다”며 “(공천개입 의혹은) 당무감사에 착수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말했다. 친윤석열계에서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며 방어에 나섰지만 윤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된 만큼 정치적 책임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는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 많다.

민주당 등 야당의 윤석열 정부 압박에는 힘이 실리게 됐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녹음을 공개하며 “이걸 국민이 어떻게 보는지 여론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며 “탄핵은 입에 올리는 순간 프레임에 걸린다. 사안의 경중은 본질 속에 담겨있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등은 “탄핵이 답”이라며 탄핵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을 지지해달라고 발언했다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으로 탄핵소추를 당했다. 다만 통화 시점이 취임 하루 전으로 당선인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공무원중립 의무 위반 여부를 두고 법률 해석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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