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엔 성장 여지가 없다...가장 불확실하고 위험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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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中國夢)’은 꺼져가는가. 중국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올해 ‘5% 성장률’ 목표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올해 1분기 5.3%, 2분기 4.7%를 기록했는데, 최근 공개된 3분기 수치도 4.6%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2029년에는 3.3%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내다본다. ‘시진핑표’ 경제 부흥책 처방에 중국 주식 시장은 일주일 만에 20% 넘게 반짝 상승했지만, 금세 약발을 잃고 10% 가까이 떨어져 횡보세다. 글로벌 기업들은 침체 수렁에 빠진 중국 시장에서 속속 짐을 싸고 있다. 프랑스의 탄소 흑연 제조업체 메르센은 지난달 중국 내 제조 공장 문을 닫았고,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한때 하루 10편씩 운행했던 미·중 노선을 3편으로 줄였다.
세계 경제 양대 축인 중국이 휘청이는 가운데 WEEKLY BIZ는 미국 최고의 중국 전문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황야성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국제관리학 교수와 최근 화상 인터뷰했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중국계 미국인인 황 교수는 직설 화법으로 말했다. “나는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 구슬을 갖고 있지 않지만, 중국이 가장 불확실하고 위험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신껏 말하자면 지금의 중국엔 성장의 여지가 없습니다.”
◇中경제, 근본적 체질 개선해야
-최근 중국이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는데.
“중국 정부는 아직도 ‘정부 주도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듯하다. 증시를 자극하고, 부동산 대출을 푸는 것은 과거에나 통했던 공식이다. 국내총생산(GDP)이 해마다 6~7%씩 성장하고, 돈이 많을 땐 정부 주도 성장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있고, 정부 재정은 온통 적자다. 이전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이대로 간다면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중국 정부는 최근 두 달 사이 금리 인하, 부동산 대출 완화, 내년도 예산 조기 투입 등과 같은 각종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9월 말 경기 대응적 조정을 강화하라는 메시지를 낸 이후 경제 관련 부처들이 앞다퉈 부양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부양책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과거 정책 재탕이 많아 약발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이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한국을 보라.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옛날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완전히 제도를 바꿨다. 그중에서도 금융과 정치를 분리하는 게 정말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 덕에 한국은 사(私)금융이 발전했고, 기업들이 다양하게 생겨났다.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문화도 자유로워졌다. 이런 체질 개선은 한국이 가진 경쟁력의 밑바탕이 됐다. 중국도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통치 방식을 개혁개방이 이뤄졌던 1978년 당시로 되돌려놔야 한다. 정치적인 분권, 경제적인 자유가 있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긴가.
“물론 기존에도 중국의 정치는 경직돼 있었다.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 용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외에는 대체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기업의 혁신, 기술의 수용 등을 두고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었다. 이건 혁신에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GDP가 엄청나게 성장했고, 기술이 발전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선 토론이 사라지고 지금까지의 성공 공식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이 발전의 길을 역행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민주주의를 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중국이자유민주주의를 택했다면 더 많이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엔 수많은 학자나 학파가 자신들의 사상을 논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통해 사상과 기술이 발전했다. 민주주의가 꼭 아니더라도 중국 사회에 더 많은 자유가 있었다면 더 발전했을 것으로 본다. 만약 자유가 있었더라면 핀둬둬(전자 상거래업체)는 구글만큼 커지고, 알리바바는 아마존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꼭 민주주의가 정답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 역시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권위주의 체제라도 더 많은 생각의 자유와 민주적인 지도력이 밑바탕돼야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미 대선 이후 미·중 관계
-오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대중 제재 측면에선 누가 당선되든 대동소이할 것이란 전망도 있는데.
“개인적으로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은 대(對)중국 전략이 크게 다를 것이라고 본다. 둘 다 대중 제재는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중국을 절대적인 라이벌로 보는 반면, 해리스는 중국을 라이벌이자 필요한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컨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중국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해리스는 선을 지키는 걸 중시한다.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반면 트럼프의 공화당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하고 싶어한다. 중국의 눈을 찌르고, 상처를 입히고 싶어하는 듯하다.”
-트럼프는 60%의 대중 관세 등을 공약했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엄청나게 올릴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관세를 낮추진 않겠지만, 올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해리스는 관세를 마구 올리면 미국 경제에 되레 안 좋다는 인식도 있고, 중산층 살림살이엔 안 좋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국 등 서방 세계와의 갈등 관계를 풀려면) 중국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본다. 대만에 대한 적대감을 줄이고, 러시아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는데 유럽에 어떻게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겠나. 중국은 북한에 있는 지도자를 돕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북한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필요는 없겠지만, 중국이 북한의 경제 구조를 전환시키는 등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북한과 러시아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 없다. 서방국가들, 일본, 한국과 관계 개선을 하는 게 중국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러시아나 북한을 적대시하란 얘긴가.
“적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서방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먼저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중국한테도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한때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을 뒷받침해주던 엄청난 파트너였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중국에 엄청 부정적이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갖는 나라가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 이스라엘, 유럽 등 각지에 다 퍼져있다. 한 집단 안에서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중국 ‘기술 굴기’는 허상”
최근 중국의 반도체 기업 SMIC는 3나노(10억분의 1미터·작을수록 우수한 공정으로 평가한다) 반도체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글로벌 시장의 테슬라의 판매량을 넘어서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높은 기술력에 저렴한 가격까지 앞세운 중국 기업 공세에 글로벌 기업들은 긴장한다. 그러나 황 교수는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중국만의 기술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이라고 했다.
-중국 기업들 기술력이 좋아져 첨단 분야에서 속속 성과를 내지 않나.
“중국의 기술력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고 본다. 비야디가 어떤 소프트웨어를 쓰나. 테슬라의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쓴다. 5나노 반도체를 만든다는 SMIC는 네덜란드 ASML의 구형 제조 장비로 연명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40년 동안 글로벌 기업들과 손잡고 기술을 배웠다. 그 유산으로 오늘날의 성과를 내는 것이지 중국 고유의 기술력은 거의 없다고 본다.”
-중국 정부가 첨단 기술에 집중 투자해 성과도 있지 않았나.
“인공지능(AI)이 중국에서 나왔나? 거대언어모델(LLM)이 중국에서 나왔나? 아니다. 중국 정부는 첨단기술 분야에 지원하지만, 이미 발명된 기술만 지원한다. 반면 미국에선 정부가 기초과학을 뒷받침했다. 발명되지 않은 기술까지도 지원하는 것이다. 일부 기초과학만 첨단기술로 성장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중국은? 3나노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1나노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을까?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만들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중국은 뒤늦게 따라잡기 위해 발 빠르게 투자를 하지만 새로운 발명은 못하고 있다. 중국의기술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MIT에 초청하고 싶다. 5분 만에 생각을 바꿔줄 수 있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중국의 성공 방정식
황 교수는 최근 ‘중국필패’(한국판 저서명)란 책을 내고, 역사적으로 중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공식으로 ‘E·A·S·T’란 개념을 제시했다. E는 시험(Examination), A는 독재(Autocracy), S는 안정(Stability), T는 기술(Technology)이다. 그는 “과거 중국은 커쥐(科擧·과거)라는 ‘시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의 사고방식을 주입하고 관료들을 키워 ‘독재’ 속에서 ‘안정’을 만들어냈다”며 “통일성을 강조한 덕에 중국이라는 큰 나라가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생각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기술’ 발전이 막히는 바람에 오늘날까지 중국 경제 성장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E·A·S·T가 중국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E·A·S·T가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큰 나라가 살아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과거 제도는 중국에서 6세기쯤 도입됐는데, 이때부터 중국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하는 ‘통일성’이 생겼다. 하지만 통일성은 달리 말하면 획일성이다. 중국 소년들은 어린 나이부터 공자라는 위대한 스승의 사상과 가르침이 주입됐다. 생각의 자유, 의견을 나누는 토론 문화가 약해졌다. 통일성은 나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획일성은 기술 발전엔 걸림돌이 됐다.”
-생각의 자유가 제한된 탓에 기술력이 뒤처졌단 얘기인가.
“그렇다. 유럽을 예로 들어보자. 유럽은 통일된 이데올로기가 없어 로마제국이 무너진 이후 여러 나라로 나눠졌지만,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자기들끼리 기술 교류를 하고 시너지를 내며 빠르게 발전했다. 반대로 중국은 틀을 깨는 사고가 막혀 있는 데다, 사회적 다양성이 없어 기술 개발이 더뎠다.”
◇피부로 느낀 두 나라의 차이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미국으로 진학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나.
“한국 학생들도 미국으로 많이 공부하러 가지 않나.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교육 수준이 높아서 갔다. 특히 나에겐 ‘자유’가 중요했다. 생각의 자유, 비판의 자유. 중국에 있을 땐 권위주의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미국에 건너와선 민주주의 문제점이 보였다. 태생적으로 비판적인 면이 나에게 있던 것 같다. 중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학자로서의 소신을 지키고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였나.
“중국엔 57개 민족이 있다지만 사실상 90% 이상이 한족(漢族)인 단일민족 국가에 가깝다. 하지만 미국엔 백인,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똑같은 이슈에 대해 너무나 달리 본다는 게 정말 새로웠다. 어떤 사람은 경제 발전이나 GDP에 관심을 갖지만, 누군가에겐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게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지금 중국은 이와 같은 다양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아직 중국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할지 모른다. 나는 학자다. 학자로서 소신껏 말하자면 이대로의 중국은 성장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달라져야 한다.”
☞황야성 교수
황야성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관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부에 진학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미시간대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를 지냈고, MIT에서는 인도·중국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의 책 ‘중국적 특색의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과 국가’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2008년 최고의 책에 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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